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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과 삼일, 사이의 여행법

by 고산골 산신령

새해가 시작됐다. 새해는 ‘작심(作心)’의 시간이다.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내세워 크고 작은 다짐을 하거나,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작심’에는 ‘삼일’이라는 단어가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운명적인 관계다. 어쩌면 우리의 결심에는 ‘작심삼일’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변화는 힘들고 어렵다. 신영복 선생은 <담론>에서 ‘머리에서 가슴까지 여행’이 가장 멀고 힘든 여행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가슴에서 발까지 여행’도 그만큼 어렵다고 강조한다. 오죽했으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했을까.


2025년 새해가 시작된 지 불과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SNS에는 작심삼일을 토로하며 후회하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더 이상 작심삼일은 없다며 작심삼일에서 벗어날 방법들이 넘쳐 나지만, 그대로 따르는 건 작심만큼이나 힘들다.

필자도 물론 새해 세운 작심에 벌써 흠집을 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배우고 있는 힐링 악기 핸드펜을 매일 30분 이상 연습한다고 다짐했지만, 1주일에 고작 하루 이틀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것도 집중해서 연습하는 게 아니라 TV를 보면서 마지 못해하고 있다. 당연히 연습 효과를 제대로 얻을 리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형식적이나마 이어가고 있다는데, 방점을 찍고 싶다.

필자는 ‘지독한 결심’을 하는 것보다는 작심삼일이 낫다고 생각한다. 작심삼일을 100번만 하면 1년 시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지만, 지독한 결심은 때론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고산골 새벽 등산 1천일’을 선언한 지인이 있었다. 새벽 등산이 좋다고 주변에서 한마디씩 하자, K는 공개적으로 이를 선언했다.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고산골 새벽을 40년 다닌 터줏대감도 1년 1~2번은 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할 일 많은 젊은 친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천일사랑’ 약속을 지켜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남해 쪽으로 가서도, 아침이면 혼자 차를 타고 고산골에 왔다가 다시 휴가지로 갔다. 명절에도 승용차로 2시간 거리인 고향에 갔다가 아침에는 어김없이 고산골에 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가는 만행(?)에 가까운 짓을 했다. 심지어 당시 쌍둥이 딸이 미국으로 유학 간 상태였지만 ‘고산골 천일사랑’ 약속 때문에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자 딸들이 어쩔 수 없이 겨울방학을 이용해 귀국했을 정도였다. 고산골 1천일 연속 등산 약속의 반환점인 500일 달성에 성공하자 그는 떡을 돌렸다. 이제 고산골 사람 대부분이 그의 ‘고산골 천일사랑’ 목표를 알게 됐고, 과연 달성할 것이냐에 대한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는 고산골 1천일 산행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하루 종일 고산골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떡을 돌리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러나 그는 그날 이후 곧바로 숲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고산골 1천일’이라는 지독한 결심과, 성공 여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를 힘들게 한 것 같다.

그가 만일 ‘지독한 결심’을 하지 않고 숲속 삶을 즐겼더라면, K는 여전히 고산골에서 새벽을 가장 즐기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처럼 성실하고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랬더라면 그가 그토록 원하는 ‘고산골 핵인사’ 타이틀도 걸머쥘 수 있었을 거다.


앞서 얘기했듯이 작심에는 삼일이라는 운명적인 말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다만 작심삼일 했다고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어’라는 숙명론적 생각에 무너지면 안 된다. 작심삼일이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다시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여배우가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현실의 문턱에 꺾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중꺾그마(중요한 건 꺾여도 그만두지 않는 마음)’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배우는 아마도 MZ세대들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을 벤치마킹, 자기 나름의 삶 철학으로 ‘중꺽그마’를 만든 것 같다.

살면서 꺾이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꺾이고 좌절해 수시로 주저앉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여배우가 말한 ‘중꺾그마’ 정신이다. 꺾여도 그만두지 않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필자도 지난해 새벽 산행 365일을 다짐했지만, 등산 앱의 기록은 279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심삼일보다는 좋았지만, 작삼오일 수준에 머문 거다. 결론적으로 1주일에 이틀은 ‘힘들어, 못해’라며 투정을 부린 셈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오일마다 작심한 덕분에 이나마 성과를 얻은 거다. 신영복 선생은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했다. 하나의 변화가 잇따라 다른 변화를 불러온다. 내 삶에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면, 그걸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오늘부터 삼일마다 작심을 새롭게 하며 끊임없는 일상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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