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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마리아인

by 고산골 산신령

설 연휴 폭설과 입춘 강추위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소식을 더디게 전해줄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숲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차고 있다. 햇살이 숲속을 비추기 시작하면, 겨우내 자취를 감추었던 이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숲속 사람들이 골골 마다 이러쿵저러쿵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넘치면 숲속에는 ‘불편한(?) 사마리아인’들도 늘어난다.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너무나 익숙한 예수의 가르침이다.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초주검 상태가 된 상인이 쓰러져 있었다. 사제는 피 흘리는 상인을 보고서 그냥 지나쳤고, 뒤따라가던 레위인(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제사장이 되는 지파) 역시 외면했다. 이들과 달리 사마리아인은 길바닥에 쓰러진 상인을 응급처치하고 안전한 여관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돈을 주며 끝까지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지파로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박해를 받은 중동의 아웃사이더 소수파다. 예수는 이 비유를 들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묻는 성경의 예화다.

우리 사회도 ‘착한 사마리아인’을 요구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 노출된 사람을 위해 응급처치하다가 본의 아닌 과실로 사망하게 하거나 신체적 부상 또는 손해를 입혔을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법’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할 정도로 사회적 구호를 권장하고 있다.

등산하다 보면 의외로 이런저런 위험에 빠진 등산객들을 만나게 된다. 당연히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산을 즐기는 이 대부분은 기꺼이 착한 등산인이 되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착한 마음이 때로는 아이러니하게 불편함을 일으키기도 한다.

새벽에 손전등 없이 등산한 적 있다. 보름달 빛이 너무 좋아 휴대용 전등 없이도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필자를 따라오던 등산객이 뒤에서 전등불을 비춰 주었다. 그는 새벽에 손전등 없이 등산하는 필자가 조금 위험해 보였던지 측은지심을 발휘한 것 같다. 그분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헷갈리게 했다. 달빛과 불빛 왔다 갔다 하니 앞의 장애물을 인식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를 먼저 앞세웠다.

그 순간 과거에 경험이 떠올랐다. 그날은 새벽 등산을 위해 손전등을 들고서 집을 나섰다. 등산하다가 중년의 부부로 보이는 커플을 만났다. 이들은 손전등 없이 등산하는 중이었다. ‘착한 숲속사람’임을 자처하는 필자는 당연히 두 분을 위해 뒤에서 불을 비추며 함께 산을 올랐다. 그런데 여성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하자, “손전등 불빛 때문에 헛 디뎠다.”고 화를 냈다.

의아했다. 어두운 새벽에 손전등 없이 등산하는 게 위험해 보여, 함께 보조를 맞추었는데 라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도 틀림없이 내 불빛에 헷갈렸을 거다. ‘선한 마음’에 든 손전등을 그들의 눈높이 맞게 비추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불빛은 나의 발걸음에 장단을 맞춘 거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행한 행위가 불편함을 준 거다. 필자가 ‘불편한 사마리아인’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거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숲에서도 의외로 ‘불편한(?) 사마리아인’들을 많이 만난다.

SNS에서 알게 된 분들과 경주 남산을 등산한 적 있다. 온라인에서는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직접 대면하기는 처음이어서 서로가 조금은 낯선 상태의 등산이었다. 그런데 일행 가운데 한 분은 등산 피로를 줄이는 올바른 보행법부터 시작해 등산 배낭, 등산옷, 스틱 구매하는 방법 등 등산에 관한 A~Z까지를 산행 내내 쏟아냈다.


봄날 숲에서 많이 만나는 ‘불편한 사마리아인’은 아름다운 노래를 크게 틀고서 산을 즐기는 이들이다. 숲에서 새소리, 노래를 들으며 심신의 피로를 풀자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사실 이들은 불편함을 넘어서서 숲속 에티켓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정치 유투브는 물론 종교 방송, 어학 방송 등을 크게 틀고서 숲을 걷는다는 건 상식 이하의 자세다. 숲에서 자신과 대화를 하거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려는 숲속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부류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나 공공장소에서는 이어폰을 끼고서 노래나 방송을 듣다가 숲에만 오면 흐트러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숲에서는 누구나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등산객들은 기본적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나의 선한 마음이 때로는 이웃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선한 마음’을 가지는 건 소중하지만, 그것만으로 나의 행위나 행동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나의 선함’이 상대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선한 게 아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 숲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불편한 사마리아인’의 경계에 서서 현명하게 산을 즐겨야 한다. 삶은 한쪽에 치우치면 문제가 생긴다. 경계에 서서 즐기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계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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