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지인이 조금은 울먹이듯 말했다. “갑순이 우짜노? 갑순이 우짜노?”라고. 갑돌이에게 큰일이 난 건가? 아니면 갑순이가 이혼이라도 한 걸까?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인의 설명은 뜻밖이었다. SNS 인기스타 ‘갑순이’라는 강아지가 어린 나이인데도,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거다. 그녀는 갑순이를 SNS를 통해 하루에 몇 번씩 보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갑순이와 SNS에서였지만 오랜 시간 공감하고 설렘을 받은 그녀에게서 자신도 모르는 울림이 찾아온 거다. 딱딱하고 굳은 삶 속에서 잠시나마 말랑말랑함을 준 친구였다.
‘치유의 숲·숲체원’ 등 산림치유 현장이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추운 겨울 동안 굳게 닫혀 있는 이곳에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산림치유지도사 역시 산림치유 체험자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현장에서 접목할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미리 시연해보고 있다. 겨울은 모든 게 움츠리게 하지만, 특히 많은 이들은 숲과는 거리를 두는 시간이다. 숲과 냉담 시간을 가진 이들에게는 봄의 꽃으로 유혹하고, 연초록으로 물들이는 숲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치 교회가 냉담교우를 고해성사로 그 마음을 달래주고 다시 신앙의 불을 지피듯이 해야 한다. 겨우내 자신의 어리석음(?) 깨닫게 하고 다시 숲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때 건강의 최대 적은 OTT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이 생각은 지인의 강아지 ‘갑순이’와의 관계를 보고서 조금은 바뀌었다. OTT나 SNS도 나의 감정을 건드리고, 딱딱한 마음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요즘 OTT는 볼 게 너무 많아서 시청자들의 시간을 너무나 많이 빼앗는 데 있다. 필자와 가끔 산을 가던 기업인이 최근 허리가 탈 나서 치료에 애를 먹고 있다. 그는 남들보다 숲을 서너 배 이상 걸을 정도로 등산에 푹 빠져 지낸 이였는데,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핑계로 숲과는 냉담자가 됐다고 한다. 숲과 멀어진 그는 집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누워지냈다고 한다. 누워서 한 거는 온갖 OTT 프로그램을 섭렵했다고 한다. 우리의 콘텐츠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고, 소파와 한 몸이 된 많은 시간은 그의 허리를 결국 탈 나게 했다.
거장들의 예술이나 미술을 접하다 보면 감정 과잉으로 일시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를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정신의학자가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명작들을 본 관광객 가운데 일시적인 불안 증상을 보이는 것에서 프랑스 문학가 스탕달의 이름을 빌려 증후군으로 부르면서 공식화됐다. 스탕달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피렌체에 있다는 생각에, 거장들의 무덤에 가까이 왔다는 생각에 황홀경에 빠졌다”고 기록을 남겼다. 물론 이 증후군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관람객을 흥분시키는 걸작을 볼 때는 명작과 명작 사이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숲에서는 ‘스탕달 증후군’ 일으킬 정도로 몰입하면 어떨까는 상상을 가끔 한다. 우리는 예술작품 앞에서 찐한 감동을 느끼고 그 감정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한다. 산림치유는 ‘보이지 않는 선물’이다. 물론 산림치유는 숲에 있기만 해도 피톤치드 같은 산림의 인자 때문에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숲의 나무와 꽃, 바람과 계곡 물소리에 오롯이 집중하고 물아일체의 공감을 일으킨다면, 그리고 그 공감을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상상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SNS에서 ‘갑순이’와 교감했듯이, 숲에서도 ‘갑순이와 함께 춤을’ 추는 몰입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감정은 일종의 육감과 같아서 우리는 감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예컨대 우리는 오감을 통해 자신이 숲속을 산책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는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숲길의 흙냄새를 맡는다.
요즘 힐링이 너무 넘친다. 설탕을 너무 투여해서 당뇨에 걸릴 지경이다. 삶에서 위로는 ‘진통제’ 혹은 ‘따뜻한 속임수’에 불과하고 일시적 효과에 그치는 마사지다. 시간이 지나면 풀렸던 어깨는 다시 뭉치게 마련이다. 니체는 ‘(상처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키울 것이다’고 <우상의 황혼>에서 말했다. 힐링의 달콤함에 너무 빠지지 말고 나의 상처를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만들자. 숲에서 춤추는 시간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