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나돈다. 드라이브하며 멀리서 숲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기보다는 산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즐기는 ‘숲속 사람’이지만, 4월은 다르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새순이 파릇파릇 하루가 다르게 돋아나는 시간이면 살자기 흥분할 정도로 좋다.
4월의 산은 시골의 할머니 ‘뽀글머리’처럼 온통 뽀송뽀송해진다. 그것도 그냥 검은색으로 뽀글뽀글한 게 아니라 곳곳에 다양한 색으로 물들인 모습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할머니의 뽀글머리를 따라서 뽀글뽀글 볶았지만 노랗고 빨간 형형색색으로 물들여, 앙증맞고 귀여움이 넘치는 게 봄 숲이다. 그래서 4월이면 가족과 함께 뽀글머리를 한 숲을 보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린다.
대학 시절 대만의 철학자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다. 삶의 지혜와 일상의 철학에 대해 가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만난 노철학자의 쾌활하고도 현명한 관점은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우리에게 익숙한 금언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성내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는 글귀를 오랫동안 임어당이 말한 걸로 잘못 알고 지낸 것도 이 책 탓이다. <생활의 발견>에는 틀림없이 안톤 체호프가 얘기했다고 인용했겠지만, 문학적 소양과 지식이 부족했던 대학생에게는 그저 임어당의 삶 철학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일 거다.
임어당이 4월 우리의 산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틀림없이 시골 할머니의 볶은 머리를 닮은 숲을 예찬하고 뽀송뽀송한 숲을 대하는 기쁨을 파헤치고 <생활의 발견>에 하나의 챕터로 덧붙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해는 4월의 발견은 전남 구례다. 구례는 노랑 세상이었다. 구례 산수유 마을만 노란 게 아니라, 구례 가는 길의 가로수 등도 노랗게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게 노랑이었다. 도시의 색깔이 이처럼 명확하고 일관되게 드러내는 곳은 드물다. 구례의 발견이었다.
남도에서 노랑 세상 구례를 발견했다면, 경북에서는 ’검은 숲‘의 발견이었다. 최근 의성, 안동 경북 북부지역으로 출장을 갔다. 내 고향 의성부터 숲은 검은 잿빛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경북 5개 시군을 집어삼켰다. 산불로 80km나 떨어진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까지 초토화됐다. 사상자만 83명에다 3천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피해액도 1조 원을 넘어 3조원설도 있다.
독일은 숲의 나라다. 독일의 숲의 상징은 ’검은 숲(Schwarz Wald)’이다. 독일의 ‘검은 숲’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챗GPT에게 물었다. ‘검은 숲’은 숲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서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느낌을 주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표적인 도시는 프라이부르크라고 답했다. 또 검은 숲은 독일의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지는 곳으로, 동화작가 그림형제의 창작의 원천이며 매일 오후 2시면 하일리겐슈타트 숲을 산책하는 베토벤도 대표적인 독일의 숲속 인물이며 베토벤의 검은 숲 산책은 유리우스 슈미트의 ‘산책하는 베토벤’이라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검은 숲’은 관광 산업은 물론 고급 목재를 생산하는 임업과 포도 재배의 중심지역이어서 농업에도 상당한 역할을 해 경제적 가치도 엄청 높다고 요약했다.
경북 북부지역에서 독일의 ‘검은 숲’이 왜 떠올랐을까?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얘기하기 위해서가 아닐 거다. 독일의 검은 숲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에게 행복과 경제적 혜택을 부여하는데, 우리의 검은 숲은 고통과 눈물, 한숨만 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좀 더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검은 숲을 바라봐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의 황폐한 검은 숲이 독일의 ‘Schwarz Wald’처럼 될 수 있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