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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신령 Aug 09. 2024

욕의 미학, 삶의 카타르시

  “김부장 개XX”

  진주 남강의 대나무밭 맨발걷기장에서 대구의 한 단체 회원들이 내뱉은 욕이 울려 퍼졌다. 필자는 최근 책으로 인연을 만들자는 단체와 함께 경남 진주 여행을 함께 했다. 40여 명의 문화기행단에는 대학생, 직장인 등 대구의 청년 10명도 동참했다. 청년 가운데 한 친구가 “부장님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여행에 참여하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진주 자존심의 상징인 진주문고와 진주박물관과 남성당 한약방 등 명소를 투어 하고서 마지막 코스가 남강 대나무밭이었다. 대나무밭은 남다른 곳이다. 나라님 흉도 보는 게 대나무밭이다. ‘부장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여행에 참여했다는 청년의 외침을 어른들이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부장님 이름 뭐고? 우리 다 같아 욕이나 한번 해 줍시다”고 제안을 했다. 청년은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듯하다가 자신 부장의 ‘성’만 알려줬다. 그리고 모두 함께 “김부장 개XX”를 대나무 숲에서 시원하게 내 뿜었다. 청년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조금은 치유된 듯했다. 다만 어른으로서 ‘욕 한마디’ 외에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벽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서예가이자 수필가인 윤영미 작가의 책 <인격예술>에 실린 한 토막이다. 작가는 젊은 학자로부터 사찰에 선물할 현판 글씨를 부탁받았다. 현판 글씨를 완성하고서 흥을 주체하지 못한 작가는 ‘갖고 싶은 글귀’를 얘기하라고 했다. 엄전한 인상의 젊은 학자 입에서 예상치 못한 희망 글귀가 나왔다. ‘아! 씨X’이었다. 젊은 학자는 배움의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아! 씨X’을 외치고 싶을 때가 너무나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때마다 속으로 염불을 외듯 ‘아! 씨X’을 외쳤다는 거다.

윤 작가는 ‘아! 씨X’을 외치고 있을 젊은 학자에게서 당당함을,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 내며 뱉는 이 한마디가 앞으로 겪어야만 하는 숨막힘에 대한 치유처럼 들렸다고 했다. 화선지에 크게 ‘씨X’이라 쓴 글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했다. 

작가는 그러면서 언젠가 ‘욕’전을 기획한 일화를 소개했다. 전시장 벽면을 육두문자로 채우고 싶었다는 거다. 소심한 친구가 늘 앉아있을 책상 앞에 시원하게 걸쭉한 욕 하나 붙여 놓으면 우울증 약을 덜 먹어도 될 것 같아서. 평상시 순하고 착한 친구가 허공에 내뿜는 긴 한숨을 대신할 것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생각한 ‘욕’전이라고 한다. 그리고서 언젠가는 꼭 ‘욕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씨를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욕의 미학’은 자연에서도 있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나무도, 식물도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다만 숲속 친구들의 욕지거리는 인간이나 곤충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상당한 치유를 선물하는 데 있다. 나무나 식물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바로 그들의 욕이다. 식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나 곤충들을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화학물질이 바로 피톤치드다. 그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생물에 대해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면 죽일 거야’하며 피톤치드를 시원하게 발사한다. 인간의 욕과 달리 자연의 욕은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물질인 게 다르다. 인간이나 숲속 친구들이나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 속에서 카다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 욕의 미학도 필요하다.      


  윤영미 작가가 앞으로 펼칠 ‘욕전’에 맞춰서 필자는 ‘욕 원정대’를 꾸려서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삶 속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욕의 미학을 현실에서 체험해 보고 싶어서다. 이골에서 육두문자를 내뱉고, 저골에서 우리 전통문화에 깃들여 있는 욕바가지를 함께 퍼붓는다면 어떨까?. 희망사다리가 사라져버린 시대, 욕이라도 숲속에서 마음껏 뱉는다면 우리에게 잠시나마 치유를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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