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선생이 영남지역 선비들과 우의를 다지고, 실사구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한 회합을 하고 싶다는 사발통문을 보냈다. 영남지역 선비들이 앞산 고산골에 모였다.
연암은 선비들과 수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궁금함부터 물었다. “서당이 휴학(방학)했는데, 어찌 학동들은 보이지 않는가? 골짜기 입구에는 숲을 예찬한 학동들의 글로 가득하지만, 숲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찾을 수 없으니”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은 서당이 휴학해도 학동들은 쉴 수가 없습니다. 부모들이 학동들을 과외선생을 찾아 사숙시키거나, 성균관에 들어가기 위해 독서당에서 강학을 시키기 때문입니다”고 선비들이 조아렸다. 연암은 “내가 여름철의 혹독한 공부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학문보다는 풍류와 심신 수양에 힘써야 한다고 열하일기에서 그렇게도 말했건만 이 무더운 여름에 어찌 어린 학동들에게 그리도 혹독하게 구는지 모르겠네”라며 혀를 찼다.
선생께서는 또 젊은 선비들이 보이지 않는 건 왜 그런가. 그들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느라 이 삼복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글공부에만 매진하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젊은 선비들은 과거와 취업 준비로 모두 바쁘기도 하지만, 요즘은 석빙고처럼 시원한 찬바람이 나오는 도서관이라는 관아에서 책을 읽거나 오락을 즐기느라 숲으로 올 생각을 않고 있습니다.” 연암은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숲이 가진 의미를 진정 모른단 말인가. 그대들은 퇴계의 후학임을 자부하는 선비들이 아닌가. 퇴계 선생은 ‘산에서 쉼은 독서를 평생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遊山如讀書)’고 강조하셨는데, 영남의 선비들이 따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일세”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암은 청나라에서 들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덕국(德國·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具多芬(베토벤)이 숲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롭게 의지를 다진 이야기다. “나의 불행한 귀는 여기서는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시골의 모든 나무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신성하도다. 신성하도다. 전능하신 신이시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얼마나 장엄합니까?” 패다분이 자신의 조카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했다. “패다분은 귀가 멀었지만, 매일 미시(未時·오후 1~3시)만 되면 숲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서 세계 모든 이들이 찬양하는 불멸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네.”
“선생님! 그럼 여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라는 질문에 연암 선생은 “여름은 버텨야 하는 시간일세. 견딤의 시간은 힘들더라도 일상에서 벗어나서 쉼을 찾는 게 필요하단 말일세. 그것도 숲속에서 견딤의 시간을 갖는 게 정말 좋다네. 숲과 대화할 시간은 언제나 어디서든 가질 필요가 있는 걸세. 한자 쉴 휴(休)의 의미를 누가 말해 보게”라고 하문했다. 한 선비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쉴 ‘휴(休)’는 나무 아래 사람이 누운 모습을 형상한 글자이며, ‘쉬다, 휴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편안히 누워 쉬는 모습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자, 연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숲속에 있는 그대들은 행복한가?”라고 다시 질문했다. 모두 “행복 합니다”고 일제히 답하자, “그럼 왜 숲속에서 행복한가?”라고 다시 물었다. 연암의 질문에 “숲속을 걸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고, 숲에는 특히 한여름에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나와 우리 인간의 기력을 높여 심신을 강건하게 만들어 좋습니다”란 답변이 나왔다.
그러자 연암이 말했다. “피톤치드가 그리 좋은 물질이면, 이 조롱박에 한가득 담아주게. 한양 가서 틈틈이 마셔야겠네”라며 웃었다. “물질을 연구하는 선비들에 따르면 피톤치드는 무색무취해서 그릇에 담을 수 없다고 합니다. 특히 여름에는 ‘사시(巳時)에서 미시(未時)(오전 10시~오후 2시)’까지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이 시간에는 숲에서 산책을 하시지요?”라며 한 선비가 말하자, 연암은 “그럼세. 그리고 그대들이 숲에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숲에서 행복한 우리 선비들의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도 숲으로 오겠지”라고 덕담을 하고서 서둘러 연암의 시간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