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날 아침에는 필자의 3형제와 자녀들, 그리고 자녀들의 자녀들까지 3대가 숲속을 걸었다. 해외 체류 중인 조카와 개인 사정이 있은 조카 부부를 제외하고 모두 함께했다. 숲이 잘 가꿔진 상주시 화북면 ‘거꾸로 옛이야기 나라숲’에서다. 필자는 이날 숲을 세 차례나 걸었다. 새벽에 홀로 걸었고, 다음에 큰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온 가족과 함께하는 숲속 대화를 했다. 5세~6세 손자들과는 ‘손자 할아버지 놀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웠고, 자녀들의 답답한 마음과 삶의 아픔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은퇴했거나 제2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부모 세대는 인생의 서글픔을 얘기하고 서로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웬만한 숲과 산을 걸어본 필자에게는 지난해 추석날 걸은 상주의 숲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지금도 숲길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정도다. 이 길에서는 손자와 무슨 얘기를 나눴고, 저 숲에서는 우리 둘째와 나눈 이야기를 뚜렷하게 되새김질할 수 있다. 상주의 숲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날 나눈 대화가 울림과 공감을 줬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3형제는 오래전부터 추석이면 모든 가족이 함께 여행하면서 보냈지만, 숲속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 건 지난해 처음이다.
숲에서 대화는 우리에게 울림을 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그 비밀은 숲속 친구들의 공명 때문이다. 숲속에서 소리는 나무는 물론 나뭇잎에도, 바위나 계곡 등 숲속 모든 친구와 공명을 일으킨다. 인간의 말뿐만 아니라 새소리 등 내뱉는 소리 하나하나가 공명을 일으켜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숲속 대화는 공명 덕분에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그래서 공감을 더 주는 것 같다. 숲에서는 먼 곳에서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가까이서 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도 바로 숲속 친구들이 일으키는 공명 덕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메아리 역시 숲속 친구들이 일으키는 공명이다.
산림치유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각종 기념일을 맞아 이벤트성 산림치유를 체험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가족 모두 단체복을 맞춰 입고서, 등 뒤에는 각자의 위치- 큰아들, 큰사위, 이모-를 표시하고서 대가족으로 치유의 숲으로 꽤나 온다는 거다. 치유 프로그램 체험해 건강을 도모하면서 가족끼리 숲속 대화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함께하며 기념일을 되새긴다고 한다.
지브리 음악감독인 히사이시 조와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가 함께 쓴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에는 ‘시대와의 공명’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내적 친밀함이 없는 관계였지만, 2000년 초반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뛰어난 작품을 경쟁하듯 만들어 냈다는 거다. 두 사람은 의식하지는 않았더라도 작품 주제나 세계관, 대중성 등에서 서로 ‘시대와의 공명’을 일으켜 작품활동을 한 게 분명하다고 두 작가는 말했다.
이번 추석엔 ‘가족 간 공명’을 일으키는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숲속 친구들이 곳곳에서 공명을 일으켜 서로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숲속 대화이면 더 좋을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취준생’이 4명이다.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 큰딸과 대학 졸업 예정인 취준생 둘째, 지난 6월 말 퇴직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필자와 올 연말 공로연수에 들어가 사실상 취준생이 될 아내, 아흔을 바라보는 장모님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취준생인 셈이다. 물론 아내는 ‘취준생 가족에 자신을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일이나 직장으로 자신을 옭아매기 싫다는 거다. 백세시대라도 일에서는 앞으로 은퇴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나무는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늘을 행해 씩씩하게 뻗어 가는 우듬지가 있다. 우리도 나무처럼 내 안의 우듬지가 얼마나 선명한가에 따라 내 삶의 모습은 달라진다. 지금 당장 우듬지가 없다고 초조해할 이유는 없다. 없으면 찾으면 되고 만들면 된다.
이번 추석에는 창녕 우포늪을 걸을 계획이다. 3형제 가족 모두가 각자의 우듬지를 좀 더 선명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작게나마 공명을 줄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