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모리 타고 배우는 관조와 살아 있음의 확신
타령은 슬픔을 붙들고 늘어지는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한 걸음 물러서서, 자기 삶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호흡이다.
우리는 흔히 국악을 한의 음악이라 말한다. 그러나 타령의 결을 오래 듣고 있으면 알게 된다. 그 안에는 무너지지 않는 중심이 있다. 울음을 다 겪은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맥박.
바로 살아 있음에 대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자신감이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이 말은 세상을 부정하는 탄식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통째로 껴안고 바라보는 눈이다.
꿈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휘말려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삶의 파도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파도를 바라볼 줄 아는 자리. 타령은 바로 그 자리에 선다.
리듬은 급하지 않다.
앞질러 가지도 않는다.
다만 제 숨의 길이를 지킨다.
그 느린 반복 속에서 사람은 배운다. 인생이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기쁨도 슬픔도 잠시 머물다 간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과해도, 나는 여전히 여기 서 있다는 것.
타령의 목소리는 허공을 향해 울지 않는다.
자기 가슴을 통과해 나온다.
그래서 그 소리는 묻지 않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대신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것. 이것이 인생이라는 넓은 무대 위에서, 내가 내 숨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는 고요한 확신이다.
깨인 꿈도 꿈이로다
이 한 마디는 체념이 아니라 여유다.
세상을 다 겪고도 비틀리지 않는 태도다.
관조는 도망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거리를 두면서도 삶을 놓지 않는 힘이다. 타령은 그 힘을 노래한다. 눈물에 젖은 목으로도 음정을 지키는 힘. 흔들리면서도 박자를 잃지 않는 힘.
살아 있음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다.
그저 오늘도 숨을 들이쉬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타령은 그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나는 아직 노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 반복은 주문이 아니라 증명이다.
내가 나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
타령은 그래서 슬픔의 음악이 아니라, 생의 자세다.
세월을 지나며 조금 낮아졌을지언정, 더 깊어진 목소리.
인생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자신감.
그 자신감은 크게 외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꿈깨이니 또 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