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차게 까였다
현재, 우주 쓰레기처럼 내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는 온갖 잡생각들.
놀랍게도 이 모든 생각들이 한방에 밀려온다.
"당신은 ADHD가 확실합니다."
제발 좀 꺼져주면 안되겠니?
줄이라도 좀 서던가~!
적당히 좀 해!
쫌!!!
(제목: HELP ME~!)ㅡ유성펜과 붓펜
대차게 까였다.
'15년 묵은 은둔형 경단녀가 다시금 인류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불안 극복기'.
이 번드르르한 카피문구를 앞세우고는 있으나 내가 정말 경단녀가 맞는것인지는 글쎄, 통 의문이다. 통상적으로 경단녀라 함은 임신,출산,육아 등의 사유로 사회적 경력이 단절된 여자들을 일컫는 말일지니.
나의 경력단절사유는 건강문제였다. 시작은 그랬다. 어찌됐건 경력이 단절된건 틀림이 없으므로 일단 한번 우겨보기로 한다. 현재의 나의 상태로는 더 이상 이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을 자신도 자원도 없으니 빼박 경단녀임이 확실하다고. (자꾸만 범주화 되고픈 이 심리는 지독한 외로움 때문일까?)
이놈의 디지털 세상은 언제나 내게 너무 버거웠다. 나의 성향과 뇌구조가 이 세상과 제대로 맞물린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도록 애를 먹었다. 어찌나 삐걱댔던지...떠올리기만 해도 뒷골이 탱글탱글해진다. 흔한 표현으로 하자면 '디지털 알러지' 뭐 이 비슷한 성향이라는 말씀인데, 그렇게 치면 나 이거 너무 불행한 배역인거 아닌가? 살다가 가끔 마주치는 항원체가 아닌, 온통 항원체로 꽉꽉 들어찬 세상에 내가 던져져 있으니 말이다. 피눈물이 난다.
그런 내가 15년전 직장생활을 그만둔 이후로 집에서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낙서밖에 없었다. 빨래와 청소, 식사준비를 하며 틈틈히 나의 마음과 상황을 낙서와 글로 옮겼다. 꽤나 부지런을 떨었다. 말하자면, 유튜브 같은데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권하는 ‘감정일기’를 나는 그림일기의 형식으로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감정일기의 필요성에 대한 지식을 갖게되기 훠얼씬 전의 일이다. 기특하게도 내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 스스로 살길을 찾아내 걸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놀라워라. 나자신이여. 생존본능이란게 이렇게 무섭다.
주부로서 기본적인 살림만 하며 두문불출 은둔하는 동안, 나 자신이 인류의 대열에서 낙오된듯한 느낌으로 줄곧 살았던것 같다. 내 발로 지구를 떠난적도 없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구가 알차고도 야무지게 나를 내다 버렸다. 그렇다. 넋 놓고 한눈 판 사이에 대차게 까인거다. 그것이 오늘날 나의 현실이다. 지구는 늘 빛의 속도로 변신중인걸 낸들....
더 이상은 인류의 일원이 아닌 나로, 제명된 나로 살고 싶지 않다. 이제 이 외계인 노릇을 쫑내고 다시금 지구별에 합류할 방법은 없을까.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은 모두 내려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 파고 들어도 될까 말까한 현실이다. 이미 알차게 구겨져 버린 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야무지게 날 차버린 지구별의 어느 한구석으로 미친척 다시 기어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일에 용기 하나만 가지고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하다. 뭔가 강력한 경쟁력 같은게 있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나에겐 그런게 없다. 나 또 삽질하고 있는거? 지금 내손에 들려있는건 오직 감정일기 속 나의 이야기들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란게 이런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다시 예전처럼 일을하고 돈을벌어 나 자신을 먹여 살릴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쓸모가 단절되었던 그 긴 시간들과 나의 심적장애를 우지끈 딛고 일어나, 오롯이 다시금 혼자만의 힘으로 설 수 있어야만 한다. 들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바보처럼 한숨만 푹푹쉬며 보냈던 15년이라는 시간. 그 무용(無用)의 시간들이 나에게 무의미한 것으로 남지 않도록 뭐든 해야만 한다. 이제 이 무거운 자책의 짐을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한다.
달팽이 등껍질같은 이불속을 벗어나 미친척 빼꼼히 세상으로 나가면, 내가 설 땅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떡 하고 나타나줄 턱이 없다. 나를 받아줄곳이 어떻게 있을수가 있겠어. 이리도 어리숙한데다 한참 모냥 빠지는 인간인데. 대책없는 아날로그 성향으로 충만한 시대착오적 인간의 대 결정체. 내가 무슨 수로. 나도 그정도 눈치코치는 있다. 내가 감히 끼어들만한 틈바구니가 이 시니컬한 세상에 존재할리 만무하다.
이토록 태산같은 막연함에 마음은 계속 안갯속을 헤매인다. 나의 눈먼 도전은 벌써 몇년째 이런식으로 제자리만을 맴맴 돌고 있다. 한심함과 자책이 또다시 스물스물 기어 올라온다.
‘죽으란 법은 없다’는 말도 있다지만 그게 과연 나한테도 해당이 될지 잘 모르겠다. 세상은 총총걸음으로 바삐 돌아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심겨 있다. 아니 좀 더 명확한 느낌을 표현하자면, 나만 거꾸로 퇴행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것도 아주 옴팡진 뒷걸음으로. 제자리만 유지할 수 있어도 차라리 다행스러울텐데... 쎄~한 현실에 두려움과 긴장이 좀비처럼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