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나는 반드시 기특하다.

by 스티키 노트

(제목 : 화풍이 뭐가 중요해)ㅡ크레용과 수채화물감

종로에서 뺨맞고 크로키북에다 화풀이를 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구~!

아플때 날 도와줄 유일한 병원(크로키북)을 찾아 갔는데, 그 병원이 내 화풍 구리다며 문도 안열어 준다면 울고 싶을것 같다.

어떻게 하면 문을 좀 열어주겠니? 나 지금 너무 아파~




나는 반드시 기특하다.


내 기억에 나자신이 기특했던 적은 거의 없다. 기특은 커녕 내 삶은 자기혐오의 끈질긴 행진이었다.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그 몇 안되는 순간에도, 나는 ‘이게 온전히 내것일리 없어..’ 오만가지 청승을 떨었다. 이게 내 노력의 댓가일리 없다. 운이 좋았던게지.


반면에, 남을 평가할땐 그렇게 후할수가 없었다. 겸양의 마음으로 그랬던 것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혹독한 자격지심이 나로 하여금 타인들을 우러르게 했을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대단해 보였고, 그들의 모든 사고가 어쩜 저리도 합리적일수가 있을까, 혜안이 가득하다 못해 범람을 하는구나.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 세상은 대단한것 투성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혐오가 마라톤처럼 꾸준히 이어지다 보면, 나자신이 스스로 기특해야 마땅한 순간이 간혹 진짜로 찾아와도, 이미 감 떨어진 사람처럼 자신을 치하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안녕치 못한 멘탈은 안녕치 못한 결과물을 낳을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타인들이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 발끈하지도, 그에 맞서 저항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나를 가학적으로 대하는 사람을 영혼의 단짝이라 여기고 붙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바보처럼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몹시도 휘둘리고는 했다. 꾸준한 자기혐오의 결과치란 그런것이다.


과거에 학교나 직장에서도 나의 나약함을 한눈에 알아본 사람들이 몇 있었다. 참 편리하게도 나는, 나를 주눅 들이려는 사람 앞에서 한치의 오차없이 주눅이 들었다. 나는 참 갖고 놀기 좋은 상대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나쁘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들.


나는 한때 나의 과거가 그 빌런들로 인해 지옥이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 상황속에는 나의 지분도 상당해 보인다. 어느 정도까지는 나 스스로가 공들여 만든 지옥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언젠가 부터 아주 아주 조금씩 멀끔한 멘탈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편을 만나던 무렵부터 였을 것이다.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아 누리고부터, 나도 그만큼 조금씩 당당해져 갔다. 그런게 위대한 사랑의 힘일까. 나는 남편을 통해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존감의 변화도 분명 맛보았다. 사랑받는 나는 그렇지 못한 나보다 훨씬 멋져 보였다. 나는 이만한 맹목적 사랑을 경험해 본적이 별로 없다.


맹목적인 면만 갖고 보자면, 부모님의 자식 사랑이 비교할수도 없을만큼 훨씬 더 클수밖에 없을텐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분의 심각한 불화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애정을 제대로 확인하거나 받아누릴 겨를이 없었다. 성장하는 동안 내내 그랬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내 부모의 불화는, 두 오빠들과 내게로 향하는 그들의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 아빠와 엄마가 우리 남매에게 마치 경쟁하듯 애정공세를 펼쳐와도, 그 모습들이 그닥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른다. 두사람이 각자 나에게 잘해주던날보다, 오히려 두사람의 관계가 별다른 충돌없이 좋아보이던 날, 나는 날아갈듯 행복했다. 하늘에서 금가루라도 떨어지는것처럼 황홀했다. 오빠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자기혐오’의 문제는 정말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이 자기혐오의 문제는 내 정신적 장애의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까지 느낀다. 농담일수도 과장일수도 없다. 이 주제를 가지고 나는 반드시 유의미한 결론에 이르러야만 했다. 내 인생을 가지고 누군가를 설득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타인들의 눈에 내 삶이 그럴싸해 보이기를 바라서도 아니다. '자기혐오'는 얼핏 부정적인 형태를 지니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 삶에 깊숙이 파고든 이 오래된 감정을 터부시 할 수는 없다. 분명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것이다.


이미 ‘자기혐오’는 나의 일부이자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한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인생에서 몰아내어야만 한다고 믿었던 나의 정신적 장애들. 그리고 그 장애의 산물들이 나에게 결코 헛된것이나 무의미한 것으로 남지 않도록 어떤 노력이든 해보고 싶다. 내가 왜 이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내 인생에서 허다한 시간을 바보처럼 낭비했다거나, 멍텅구리처럼 인생을 허비한 것으로 매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일까?


내 짐작대로, 바보같은 허무한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만들었음이 확실하다면, 무의미한 몸부림의 시간들이 나를 만든것이 확실하다면, 그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선언해 주어야 한다. 내 입으로. 나의 목소리로.


그리고 내가 찾아내 주어야 한다. 반드시 내 손으로 찾아야 한다. 손톱이 험하게 닳아지고 손끝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다 해도, 내가 발굴해 주고 발견해내주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일을 하겠는가.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억지라고 말할것이다. 상관없다. 나 자신을 강력하게 위로하고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까지 함께 위로하며 괜찮다고, 절대로 무의미 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등 두드려 주고 싶다. 내가 나의 책에 담아 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런것들이다.

그래서 무용(無用)하거나 무의미해 보이는 모든것, 바보같아 보이는 모든것들이 함께 나의책에 담겼으면 좋겠다. 고통스러울때마다 진통제가 되어준 형편없는 낙서들과 문장력 꽝인 망한 글들도 모두 나의 책에 담겼으면 좋겠다.


기특하게 취급되기 어려운 것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나의 책에 충분히 담기고 나면, 왠지 나도 비로소 나자신을 기특하다 여길 수 있을것만 같다. 모두가 한심하다고 여기는 시간들이, 정말로 모두에게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내가 기특하지 않은가.


매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어 조밀하게 살아가는 삶만이 합리적인 삶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허무하게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듯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뚜껑을 열고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들만의 치열함이 있는 법이다. 점심때 상추를 헹구다 발견했던 달팽이 한마리도, 자신의 속도에서 어쩌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고 있었을지 모른다. 치열하게 도망가던 중이었을지도.


나는 기특하다.

굳이 기특하다.

비록 타인의 눈에 무쓸모 인간으로 보였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내 앞에서와 내 마음을 아는 몇몇 누군가 앞에서 만큼은 기특하다. 그 수가 초라하다해도. 알고보니 나뿐이었다 해도 나는 기특하다. 그리고 애 많이 썼다. 밥먹을 자격 있다. 절대 밥벌레 아니다. 쓸모없는 인간 아니다. 쓰레기 같은 존재도 아니다. 소중하다. 많이 많이 소중하고 살 가치 있는 존재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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