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공들여 울다

by 스티키 노트

(그림 제목: 태엽을 감아줘)ㅡ싸인펜과 아크릴물감

공포의 이불밖 세상.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의 근심거리. 과거의 트라우마. 나는 어디가 잘못된걸까. 내 공포의 근원은 어디이며 이 불안은 언제쯤 끝이 날까.

나의 기나긴 은둔에 끝내 종지부를 찍을수 있을런지.

오직 은둔만이 유일한 안전기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공들여 울다


5년전 어느날 난데없이 공황장애가 들이닥쳤을때, 난생 처음 겪어보는 온갖 극한의 현상에 도무지 멘탈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공황장애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경험도 없었기에, 시시각각 토네이도처럼 휘몰아 치는 공포와 신체증상들에 대해 맨몸으로 맞서는 수 밖에. 아니, 그냥 수줍게 메다꽂히는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파도앞에 놓인 하찮고도 무력한 존재가 바로 나였다. 즉시 정신병원으로 달려가는게 맞지만 간이 요만했던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오도가도 못한채 집안에만 짱박혀 있기를 고집하다 보니, 증상은 날로 심해져 갔다.


그당시 내가 할수있는 단 한가지는 그저 우는일뿐이었다. 감당할길 없는 거대한 불안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인정사정없이 밀어 닥칠때마다, 나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식은땀이 흥건하도록 울고 또 울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하다 싶을만큼 나는 오래도록 펑펑 울며 기도했다. 극심한 심적고통은 쉽사리 잦아들줄을 몰랐고,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면 거침없는 울음은 통곡이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에는, 그가 알아채고 놀랄까봐 옷방에서 혼자 입을 틀어막고 숨죽여 울었다.


매일같이 울다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죽기 전까지 울었다. 이러다 정말로 죽을수도 있겠구나.


난 왜 그렇게 아득바득 공들여 울어야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살기위해 그랬던것 같다. 내장 끄트머리까지 남김없이 토해낼 기세로 펑펑펑 울고나면 겨우 숨이 돌기시작했고, 온몸에 불덩어리처럼 차올랐던 열도 한결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신묘한 일이었다.


눈물의 지극히 연약한 구성성분들이, 골리앗을 방불케 하는 공황장애의 폭풍같은 고통앞을 감히 막아 섰다. 단 몇방울의 눈물은, 마치 어린 다윗처럼 당돌하고 작은 사냥개처럼 용맹하다. 매번 적앞에서 맥없이 메다 꽂히는 나를 위해,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지 않고 악을쓰며 적장을 향해 달려든다. 왈왈왈. 나를 위해 싸운다. 나를 지키려고 여린몸을 던진다. 그럴때마다 나도 사냥개처럼 용맹하게 울었다. 최선을 다해 울며 버텼다. 공황과 싸웠다. 이 근본없는 것들에게 맞섰다. 피가 철철 흘렀지만 죽지 않았다. 무서워 죽을뻔 했지만 결국 살아 남았다.


당시에는 울수라도 있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주신 최고의 진통제였다. 타이레놀보다 백번 나았다. 우는 방법을 몰라 울지 못하는 사람들과, 눈물의 위상을 매도하여 철벽을 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안쓰럽기까지 했다. (특히 남자들.) 그래 버티자. 공들여 울며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말라서 허연 바닥을 드러내는 날도 오겠지. 버티다 보면 고통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날도 찾아 오겠지. 그러다 보면 인생의 부침도 세트로 희미해지지 않을까?


그러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남편도 운적이 있을까? 내 남편처럼 강직한 사람도 가끔은 펑펑 울고 싶은날이 있겠지? 근데 아무리 기억속을 뒤집어 봐도 여태 그가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그가 가끔은 나 없는데서라도 좀 울었으면 좋겠다. 찰랑찰찰랑 삶의 고통이 차오를때마다. 고통이 수위를 넘나들때마다. 그리하여, 고된 일을 주욱 견디기만 했을 그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으면 좋겠다. 꿀꺽 꿀꺽 삶의 온갖 스트레스를 삼켜버리기만 했을 그의 심정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욕실에 들어가, 두꺼비처럼 팅팅 부어오른 거울속 내 면상을 쳐다보고 있자니 살짝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났다. 양껏 눈물을 뽑아 낸 뒤에만 찾아오는 특유의 시장기를 느낀다. 묵은 감정을 깡그리 비워내 버린 뒤, 공기밥 한그릇까지 달게 뚝딱 비워낼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히 행복하고 감사하다. 어쩌면, 고통을 겪으며 내가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울수 있다는 사실 따위에 기어코 감사가 나오는 것을 보니.


그러니 나의 행복, 별거 없다. 고통스러울때 시원하게 펑펑 울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 몇방울의 수분이 인생의 크나큰 선물임을 꿰뚫어 볼수 있다면 더욱 큰 행복이다. 고통에 목이 메어 케켁대면서도, 눈물 한방울 흘릴수 없을때의 그 곤란함과 언친 마음을 한번이라도 느껴본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것이다. 사이다같은 한방울의 눈물이 시퍼런 에너지 음료 서너병보다 백배는 더 파워풀하다는 사실을.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불안과 슬픔이 나를 삼키려 할때


자신을 끌어안고 폭풍처럼 울것.


아무도 보지않는 곳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울것.


마땅한 장소가 없다면 마스크와 썬글라스와 모자를 눌러쓰고 거리로 나갈것.


행인들 신경쓰지 말고 성큼성큼 걸으며 펑펑펑 남김없이 울어 제낄것.


반드시 울것.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밥한그릇 뚝딱 해치워 버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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