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서로 늦은 결혼으로 인해 주변 친구들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때 돌잔치를 할 정도로 당시 사회 통념상 노처녀, 노총각이 늦게 나마 정신을 차리고 늦은 결혼을 치뤘다.
그래서인지 늦게 본 아들을 팔불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뻐하는 아들 바보로 살아왔다.
2007년 가을에 회사 행사로 인해 우리 부부는 말레이시아에서 4박5일의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출발할 때부터 어머니께 아들을 맡기고 아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힘들었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어머니댁 현관문을 열었을 때 ‘다다다닥’ 달려왔던 아들이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고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우웨엥”
대성 통곡을 하면서 엄마 아빠의 손길을 뿌리치고 안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걸어 잠궜다.
그날 우리 부부는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면서 아들과 약속을 했다.
“아들 미안해. 엄마 아빠가 잘못했어 다음부터 해외여행은 꼭 우리 가족 모두 같이 갈께. 다시는 울 아들 떼어놓지 않고 다닐께.”
“우와앙~~!. 훌쩍~! 진짜지 다신 나 떼어놓고 엄마 아빠만 나가지 않을 거지?”
“응, 약속. 아빠 약속 잘 지키는 거 알지?”
“응, 훌쩍, 알았어. 다신 그러지마. 훌쩍.”
그날 이후 우리가족은 항상 모든 여행에서 함께였다. 국내든 국외든 항상 같이 여행을 떠났다. 국내 여행의 경우 대부분 아들은 엄마 곁에 있었다. 아빠는 너무 많이 걷으려고 하고 산에 가기도 하고 힘들게 하니 엄마 손을 잡고, 엄마에게 눈치를 주며 않이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외여행에서는 달랐다. 세상에 아빠 껌딱지도 그런 껌딱지가 없었다. 나의 모든 움직이는 동선에 아들은 함께했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같이 따라 다녔다. 아빠는 외국인 회사를 다니고 외국사람들과 많이 만나서 대화도 많이 하고, 뭐 필요한게 있으면 난생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 뭐라고 뭐라고 하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고, 그러니 아빠가 외국에서는 가장 믿을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도 외국에 나가면 한국에서보다 나에 대해 훨씬 더 너그러워지며, 나긋나긋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해외여행에[서 주로 내가 카메라를 들고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찍어서인지 내 얼굴이 나오는 사진은 별로 없었다. 간혹가다 발견되는 내 얼굴이 나온 사진에는 항상 아들이 곁에 꼭 붙어 있었다.
그랬던 아들녀석이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엄마 아빠의 곁을 떠나 친구들과 가까운 일본이긴 하지만, 5박 6일의 일본 여행을 떠났다. 기분이 묘했다.
떠나기 전날 오랜만에 아들과 동네 공중목욕탕에 갔다. 해외여행 다는데 몸이 지저분하면 쓰겠냐고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다고 간신히 설득하여 아들과 공중목욕탕에 갔다. 우리 부자는 습식사우나실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같이 땀을 흘리면서 주변에 아무도 없고 우리만 있을 때 도란도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등 대화를 나눈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단연 아들의 해외여행이었다.
“너 어렸을 때 해외여행가면 항상 아빠 껌딱지였는데, 어느새 커서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가고 울 아들 많이 컸네.”
“그러게요. 그때는 외국사람들이 무서워서 아빠 손만 붙잡고 다녔는데.”
“그래도 아빤 그게 너무 좋았어.”
“헤헤헤.”
“아빠, 선물 뭘 사다드릴까요?”
“아빤, 필요한 거 없어, 다만 네가 안전하고 재미있게 잘 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신기한 것도 많이 보고, 필요한 물건도 발견하면 사고 그렇게 하면서 다치지 않고 돌아오면 그게 선물이야.”
“에이 또 잔소리 하시려고 한다.”
“울 아들 첫 해외여행이니 잔소리 하고 싶어지지. 하지만 여기까지만 할께.”
그외에도 해외여행 마치고 돌아오면, 대학교 휴학 준비도 하고, 군대도 가고 하니, 두런 두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서로의 건강에 대해 잔소리도 하고…
“예전에는 아빠 등이 많이 넓었는데…”
“이제는 네 등이 더 넓다. 아빠 너 등밀기 힘들다. 휴~~.”
“아빠 엄살 피우지 말아요.”
“야, 아빠도 많이 늙었어.”
“아니에요. 아빠는 아직 건강하고 팔팔해!!!”
녀석이 갑자기 언성이 높아졌다. 녀석은 아빠가 나이들어 자기보다 힘이 없어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큰 보호막이었는데… 하면서.
다음날 새벽에 아들을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들은 초저녁부터 잠을 청해 그나마 잠을 좀 잤지만, 괜히 내가 긴장을 해서인지 잠을 이룰 수 없어 뜬눈으로 그 새벽까지 기다리다가 아들을 깨워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아내도 내심 걱정이 되었는지 같이 가겠다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었다.
공항출국장에 아들을 내려 주고 아들과 포옹하며
“아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놀다와! 사랑해.”
“네 아빠. 잘 다녀올께요. 사랑해요.”
“잠깐 잠깐 나도 나도 아들 잘 다녀와.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
“나도 사랑해요. 엄마. 잘 다녀올께요.”
하여간 우리가족은 유별나긴 유별나다. 공항출국장에서 먼…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며 옆에 있는 아내가 눈물을 훔친다.
이렇게 아들이 엄마 아빠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상에 당당히 나아가려 한다.
그런 아들의 앞날을 응원하며 팔불출 아빠가 이렇게 나마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