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by 칠봉

나는 어려서 이것저것 그 나이때에 하는 놀이들에 재주가 있었나보다. 특히 팽이치기가 그러했다. 팽이에 국방색 군화끈을 꽁꽁 감고 힘껏 팽이를 돌리면 슝슝 소리가 나며 팽이가 잘도 돌아갔다.

70년대 아이들의 놀이터는 공터였다. 아무런 놀이시설도 없었지만, 밥만 먹으면 공터로 놀러 나갔다. 놀이시설은 없어도 아이들 몇명만 모이면 그 자리에서 놀잇거리가 생겼다.

그중 팽이치기는 그 당시에는 고가의 놀이였다. 일단 팽이를 사야하니깐, 그런데 그당시 내 팽이는 좀 독특했었다. 당시 팽이는 나무를 깎아서 가운데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군대에서 사용하던 총알을 넣어 만든 일명 총알 팽이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다른 아이들이 사용하는 팽이는 구리총알 팽이였고, 내가 사용하는 팽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철갑탄으로 만들어진 강철총알이 들어 있는 팽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팽이의 힘이 무척이나 좋았다. 팽이치기 중 찍기 놀이에 최적화가 되어 있었다.

팽이치기 종목 중 찍기는 꼴찌부터 팽이를 돌린다. 돌아가는 팽이 위로 찍기라는 방식으로 팽이를 돌리면 팽이가 날아가 돌고 있던 나무팽이 위에 떨어져 팽이에 상채기를 낸다. 그런데 나의 팽이와 나의 기술이 합쳐져서 종종 다른 팽이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런 팽이놀이는 공터에서만 가능한 놀이였다. 지금은 팽이가 있어도 국방끈이 있어도 이런 찍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포장도로에서는 딱딱해서 팽이가 부서지고, 학교 운동장의 흙은 너무 물러서 팽이의 총알이 땅을 파고 들어 팽이를 돌릴 수 없다.


공터는 70년대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집을 지을 땅이 잠시 비워져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밟고 다니고 리어카나 짐자전거도 왕래를 하다보니 저절로 땅이 다져져서 딱딱한 곳이었다. 집을 지을 공터였기 때문에 포장도 안되었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단단하게 다져져 왠만한 포장 도로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당시 어린 나의 눈에는.


그런 곳에서 우리는 팽이놀이를 했다.

나에게는 2살 어린 동생이 있다. 동생이 애지중지하던 나무팽이가 있었다. 그 팽이의 총알도 내가 박아주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그 팽이를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놀았다.

어느날, 윗동네에서 팽이 좀 돌린다는 녀석들이 나에게 도전을 청했다.

“야! 너 팽이 좀 돌린다면서! 우리랑 한판 붙자!”

“그래! 나중에 팽이가 부서졌다고 울면서 물어달라고 하지 마라!”

나는 흔쾌히 도전에 응했다. 두살 어린 동생도 형아 빽을 믿고 그녀석들의 대결에 동참하기로 했다. 팽이놀이를 하면 할 수록 그녀석들의 팽이에는 나의 가공할 찍기로 인한 상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팽이치기가 무르익던 때, 내가 얄미워한 윗동네 녀석의 팽이를 겨누고 있는 힘껏 팽이를 던졌다.

“빠싹!”

팽이 하나가 완전히 반으로 갈라져서 돌아가던 그 힘에 의해 날아가버렸다. 총알 들과 함께.

“우왕!!! 형아 왜 내 팽이를 부셨어~~~!!!”

그렇다 나의 회심의 찍기가 잘못 겨눠져서 동생의 팽이를 부셔버린 것이었다. 가뜩이나 울보였던 동생은 뭔 큰일이나 난 듯이 엉엉 때를 쓰며 울었다.

“우왕! 형아가 내 팽이를 내가 제일 아끼는 팽이를 부셔버렸어~!!!”

그날의 윗동네 녀석들과의 팽이치기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나는 부서진 팽이와 총알들을 찾아 이리저리 부산거렸고, 동생은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이른다고 뛰쳐나갔다.

얼추 부서진 팽이와 총알을 수습하고 나도 동생이 간 집으로 뛰어갔다.

“야 이녀석아! 왜 동생 팽이를 부셨어! 너도 팽이 하나 부서진게 뭔 대수라고 그리 울어대냐!”

“흑 흑 흑 헝아가 흑 흑 내가 흑흑 제일 흑흑 좋아하는 흑흑 팽이를 흑흑 부셔버렸어~ 우와앙 엉엉.”

그날 난 어머니에게 등짝에 손자국이 날 만큼 쎄개 얻어 맞았다.

“아야! 팽이치기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될줄 몰랐단 말야!”

그러고는 나도 아픈 등짝을 만질 수 없음에도 등에 손을 얹으며 엉엉 울었다.


그날 저녁을 먹고 동생과 둘만 있을 때 난 동생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동생아. 형아가 미안해 나도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내가 더 좋은 팽이 구해줄께. 정말 미안해.”

“응 형아 괜찮아. 나 이제 괜찮아. 근데 팽이 언제 구해줄꺼야?”

그 이후 팽이를 다시 내가 구해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팽이에 대한 추억은 아련하게 울 두 형제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70년대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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