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

by 칠봉

지금은 썰매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눈썰매를 상상한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썰매는 눈썰매와는 다르다. 나의 어린시절 썰매에 대한 추억으로 떠나 보려 한다.


나는 자주 외갓집에 놀러 갔다. 여름날의 시냇가의 추억도 많았지만, 겨울의 추억거리도 상당히 많다. 그중 으뜸은 썰매타기 였다.


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사전의 준비들이 필요하다. 먼저 외숙부께서 삽을 가지고 나가서 가장 낮은 곳의 논에 물을 막는다. 그리고 윗논에서 흘러드는 물을 모으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외삼촌! 썰매 타게 해준다면서요. 빨리 타고싶어요!”

“응, 준비해 뒀으니 지둘려 봐. 한 이삼일이면 썰매 탈수 있을거여.”

그리곤 생선궤짝을 가지런히 정리하신다. 생선궤짝은 썰매의 주요 재료 중 하나였다. 서울에서 사용하는 생선 궤짝과 달리 시골 생선 궤짝은 두툼했다. 그래서 썰매의 윗판을 만들기 안성 마춤이었다.

그렇게 윗판을 준비하곤 날을 박아 썰매를 미끌어지게 하는 기둥 두개를 좋은 각목을 손질한다. 그 각목에 두꺼운 연철을 아궁이에 뻘겋게 달군후 무쇠집게로 집어서 각목 기둥에 앞 부분을 깊게 박아놓고 망치로 살살 두둘겨서 가리런히 정렬하면서 각목에 자리잡게 한다. 그렇게 두개를 만들고 그 기둥을 양쪽은 나란히 놓고 그 위를 준비해둔 생선궤짝의 판자를 올려놓고 못을 박아 썰매를 완성한다.

얼음썰매는 썰매와 젖게가 필요하다. 젖게는 막대기에 손잡이용으로 T자로 손잡이를 만들고, 밑 부분에 대목을 박아 넣어 얼음을 찍어서 썰매를 짖히게 하는 용도의 도구다.

이또한 외숙부님은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동장군이 도와주면 내일 쯤이면 탈수 있을 거여.”


따뜻한 아랫묵이 좋아 동이 터도 이불속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내가 다음날은 동이 트자마자 물을 댄 논에 뛰어나갔다.

“아이고 저 놈이 내복바람으로… 감기 들어 이눔아~! 연능 드러와~!”

외할머니께서 소리치쳤다.

“할머니! 할머니! 얼음판이 생겼어 썰매장이 생겼어. 외삼촌이 거짓말하지 않았어!”

나는 꽁꽁언 논의 빙판을 확인하곤 할머니께 뛰어가며 이렇게 외쳤다.


“아침밥은 왜 이렇게 늦는거야! 썰매 타러 가야 하는데! 빨랑 빨랑 주세요!”

밥값도 못하는 어린 서울놈이 아침밥을 달라고 성화다. 그것도 지 놀러나가야 하니 빨리 달라고, 하지만 외할머니는 웃으시면 그 외손자의 투정을 다 받아주셨다.

“그랴, 울 손주 쫌만 더 지둘려!”

그날의 아침은 어떻게 입에 넣고 어떻게 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청빨리 입에 와구와구 아침밥을 집어 넣고 따뜻한 옷을 입고, 처마 밑에서 나가 외삼촌을 기다렸다.

“외삼촌 빨리 드시고 나오세요. 빨리요."

“이눔아, 슝늉은 마셔야 할 꺼 아니여~!”

충청도 사람이 느리다고 하는데 그날이 제일 느렸던 것 같다. 천금같은 시간이 흐른뒤 외숙부님은 어슬렁 어슬렁 밖으로 나오셨다.

“삼촌! 삼촌! 빨리요. 빨리요.”

나와 사촌들은 외숙부님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나 삼촌을 재촉하는건 나뿐이었다. 사촌들은 서울촌놈이 보채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심 좀 더 외숙부를 재촉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들은 썰매들 들도 삼촌을 따라 썰매장으로 뛰어갔다.

“뛰지 마라! 자빠진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우리들을 보고 외숙부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나와 사촌들에게는 귓등으로도 안 들렸다.

드디어, 아무도 개시하지 않은 빙판에 외숙부께서 만들어 주신 썰매를 내려놓고, 젖게로 힘차게 얼음을 찍어 뒤로 재꼈다.

‘뽀드득’ 얼음 알갱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썰매가 앞으로 나갔다. 외숙부님이 정성껏 만들어주셔서 인지 썰매는 치우치는 것 없이 똑바로 잘 나갔다. 젖개에 힘을 더 넣고, 더 빨리 젖게 되면 속도는 서울 스케이트장의 스케이트의 속도와 맞먹을 만큼 빨랐다. 더구나 그 넓은 얼음판에 나와 사촌들 뿐이니 정말 내세상인 듯 놀았다.

아직 어려서 아침일찍 나오면 감기걸린다고 집에 붙잡아둔 내 동생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한참을 썰매를 타고 있는데, 저만치 모닥불을 피워놓고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이시던 외숙부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야들아~! 추운게 이리루 와서 군고구마 먹고 쉬었다 타거라~!”

“야!”

외사촌들은 타던 썰매를 끌고 외숙부님 곁으로 달려갔다. 나는 군고구마보다는 썰매 타는 것이 더 좋았지만, 외사촌들이 전부 고구마에 정신이 팔린 모습을 보곤 나도 모불로 뛰어갔다.

김이 모락 모락 피오른 노오란 군고구마를 반으로 갈라서 나에게 건네시는 외숙부님께

“외삼촌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군고구마를 받아서 입으로 가져갔다.

벌써 외사촌들은 입가와 손이 쌔까먼 검댕으로 엉망이었다. 뽀얀 내 얼굴에 서로들 검댕을 묻혔다. 깔깔깔 거리며 서로의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군고구마를 먹고 있을 때 저만치에서 “우앙, 우왕 나도 형아들이랑, 누나들이랑 놀래.” 하며 제지하는 어머니의 손길을 뿌리치며 뛰어오는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앙 헝아 헝아 나도 썰매 탈래 나도 나도.”

군고구마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그래 너도 함 타봐. 저쪽에 저거 타면 돼” 하고 내가 타고 있던 썰매를 가리켰다.

동생은 어디서 본것은 있어서 제법 썰매타는 자세는 잘 잡긴 했지만, 젖개가 익숙하지 않아 출발하지 못하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헝아 헝아 나 좀 도와줘. 나좀 나좀.”

어쩔 수 없이 나는 동생이 등을 밀어주며 썰매를 태워줬다.

“헝아 헝아 정말 재밌어. 계속 밀어줘 헝아!”

그날 난 동생덕분에 몇리는 뛰어 다녔을 것이다. 동생의 등을 밀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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