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서 철든 건가?
아들의 면회를 하고 난 후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욕심이 생긴 겁니다.
자기의 삶을 좀 더 신경 쓰고, 육체적으로 건강해지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일부러 책을 찾아서 읽으려는 아들의 모습에서 아빠로서의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습관이 되게 하고, 조금 더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도록 이끌어 주고 싶은 욕심 말이지요.
아들이 군대 가기 전, 아들과 함께 사우나를 갔었습니다. 평소 아들과의 대화는 엄마에게 맡겨놓고 저는 특별한 대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간히 목욕을 함께 가면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특히 습식사우나에서 아들과 단 둘이 있을 때는 아들이 곧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아빠 난 이런 거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다. 부라부라"(지극히 개인적인 대화라서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과 함께 목욕 가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는 아버님 때부터 내려오는 대물림 같은 것이지요. 저희 아버지도 무척 내성적인 분이셨지만, 같이 목욕을 할 때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요.
다시 아들 군대 가기 전 사우나에서의 한 대화가 기억납니다. "아들아 사람은 살아가면서 종교가 필요하단다. 그런데 우리 집안은 크리스천이니깐, 되도록이면 교회나 성당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좀 했으면 좋겠다. 군대에서는 세례도 사회보다는 쉽게 받을 수 있어서 종교에 입문하기 좋단다. 한번 신앙생활을 해볼래?" "예. 저도 생각해 보기는 했어요." "교회, 성당 둘 중에 어디가 좋을 것 같으니?" "저는 교회는 좀 시끄러워서 부담돼요. 성당에 나가보고 싶어요." "그래 너희 생각과 판단을 존중한다. 잘 판탄 해서 결정하거라." "네"
이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며칠 전 군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는 아들 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아빠 저 성당에 다닙니다. 이번주일에 세례도 받고요 세례명이 '라우렌시오'입니다. 축하해 주세요." "아이고 우리 아들 잘했다. 잘했어. 축하하고 또 축하한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라우렌시오 성인을 검색합니다. 그리고 결과를 보곤 "우와, 아들 라우렌시오 성인은 요리사의 성인이야. 정말 잘 됐네 잘 됐어." "네, 저도 수녀님으로 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었어요. 세례명과 제 희망이 잘 맞는다고요."(제 아들은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 대학교를 요리 관련 학교에 수련 중입니다.) "정말 축하한다. 아들 사랑해." "네 저도 사랑합니다. 다음에 또 전화드릴게요." 그렇게 전화를 마무리하고 아내는 곧바로 장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우리 아들이 글쎄 세례를 받는데요. 그리고 세례명이 '라우렌시오'라고 하네요. 라우렌시오는 요리사의 수호성인이라고 해요." "아이고 잘됐네 잘됐어."
다음날이었습니다. 아내와 뒷산을 가볍게 산책 삼아 올라갔습니다.(뒷산이 북한산입니다). 한 8Km 정도 산행을 하고 내려와 근처 성당을 찾았습니다. 가족수대로 향초를 올리고 오랜만에 성당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이 어린이에서 어엿한 청년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그 앞길에 축복을 내려 주시고, 항상 건강한 가운데 아들의 희망하는 꿈에 다가가는 그 발걸음에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이렇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내와 함께 성당에서 기도드린 후 동네 시장을 들러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의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라우렌시오 어떻게 세례는 잘 끝났어?" 순간 아들이 자기를 라우렌시오라고 부르는 것에 적응을 잘 못하더군요. "아니, 이제 세례도 받았으니깐 네 세례명으로 말한 거야." "아하 그렇군요. 네 성당에서 세례 잘 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PX에서 이것저것 사서 보내드렸어요. 어버이날도 됐고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담아서 보냈으니 함 보세요." "아이고 네가 힘들게 번 돈을 왜 그렇게 허투루 쓰냐. 이제는 정말 됐으니 네 월급은 모두 잘 저축해라. 용돈이 필요하면 우리가 보내줄 테니 네가 힘들게 군대생활하면서 받은 월급은 함부로 손대지 말아라." "네" 그리고는 책에 관한 이야기, 일본어에 대한 이야기. 등등을 나누었지요. 세상에 내가 우리 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줄이야. 하하하. 녀석 다 컸네 다 컸어.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이 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들도 "저 복학하면 과대표나 학생회장 이런 거 해보려고요. 다 애들 같아서 제가 좀 나서야 될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지 않나 군대에서 찍을 사진을 보면 처음에는 저기 한쪽 구석에 조용히 있던 놈이 날짜별로 점점 가운데로 오더니 훈련소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에는 우리 아들이 정 중앙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라우렌시오는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여태껏 커오면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 한 번도 센터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센터에서 사진을 찍다니. 조금 더 욕심이 납니다.
주마가편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 물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이 군대 생활을 우리 아들이 좀 더 성장하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아들에게 이 책도 권하고 저 책도 권하고, 대인관계에 대한 이야기,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 노력에 대한 이야기, 끈기에 대한 이야기. 집중력에 대한 이야기, 평정심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들을 풀어서 하나씩 하나씩 늘어놓습니다. 그리곤 "아들 이제 후반기 교육과정을 마치고 자대배치가 될 텐데, 어디가 되든 아빠는 상관없단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아빠는 언제든 달려갈 거고 그래서 그건 걱정 안 해, 그런데 네가 또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 긴장하고,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고, 졸아있을 우리 아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많이 된단다. 하지만 아들, 그런 것을 이겨내면 낼 수록 너의 멘털은 강해지고,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감이 생길 거야. 지금 봐봐 너는 두 번의 그런 과정을 잘 이겨내고, 지금 환경에 잘 적응했잖아. 심지어 다른 사람은 포기하는 그 어려운 과정을 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잖아. 그 마음, 그 다짐, 그 정신력이 중요한 거야. 군대 생활을 하면서 그걸 단단히 키우는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란다." "아빠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해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들 사랑한다. 언제나 엄마, 아빠는 너를 지지하고 응원한단다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그렇습니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아들의 마음과 의지가 여간 보기 좋고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습니다. 뭐 제가 워낙 아들 바라기, 팔불출이라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아들의 군대입소는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아들에 대한 사랑, 믿음,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군대 보내시고 같음 마음이겠지 하는 생각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더욱 깊이 느껴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