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커 가는 것을 느낄 때

군대 가서 철든 건가?

by 칠봉

아들이 얼마 전에 입대를 하여 지금은 후반기 교육 중입니다.

군대 가기 전 아들은 무기력한 곰처럼, 항상 졸음을 달고 있었고, 게다가 다양한 음식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잘 먹기도 하였죠. 그러다 보니 과체중을 달고 살았습니다.

군대 가기 일주일 전부터는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집중을 잘 못하는 분리불안 증세 까지도 보였습니다.

제 아들은 심각한 I 성향으로,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거든요. 새로운 환경 게다가 부모와 떨어져서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여야 하는 환경에 처하게 되는 불안, 초조, 혼란 등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던 모양입니다.

훈련소 입소 후 첫 통화에서는 우리 부부가 걱정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많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엄마, 아빠를 무척 보고 싶어 하였지요. 그런 모습에 더욱더 걱정이 되었지만, 아내에게는 대범한 척하며

"나도 처음 군대 들어갔을 땐, 불안하고 초조했어, 낯선 환경에 처음 접해보면 누구나 그런 거야."라고 하며 위로하고 다독여줬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통화부터는 아들의 목소리가 달라졌습니다. 물론 훈련하며 소리를 많이 지르는 관계로 목은 쉬어 컬컬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고, 적응을 웬만큼 한 것인지, 동기들이 좋다. 식사도 의외로 나쁘지 않고 맛있다. 잠도 침대에서 잘 잔다. 샤워도 편하게 사용한다. 심지어 화장실에 비데도 있어서 너무 편하다. 등등이었습니다. 그 대화 중 상당 부분은 동기들이 너무 편하고 재미있고 자기한테 너무 잘 대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제야 '아 우리 아들이 이제 제대로 적응을 했구나'라고 생각하였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옆에 누가 있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좋게만 표현하는 거 아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쉽게 바꿀 애가 아닌데?" 라며 오히려 변한 아들에 대해 걱정을 하더군요. "아니야. 우리 아들이 많이 성장하고 마음이 탄탄해져서 훈련소 초기의 어색함이나 불안함을 이겨낸 거야! 좋은 거야 좋게 바뀐 거야.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고 아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몇 통화의 전화를 더 했고, 드디어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전날밤 한잠도 못 잤습니다. 아들을 본다는 기쁨에 흥분되어 제 심장이 밤새 쿵쾅쿵쾅 나대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퇴소식 당일, 새벽같이 준비를 하고 아들을 보러 급히 차를 몰았습니다. 운전하는 동안 그동안 아들이 커오면서 우리 부부에게 즐거움 줬던 이야기, 커오면서 아팠던 이야기,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의 이야기 등등 온통화제는 아들이었습니다.

훈련소에 도착한 후, 아들을 데리고 빨리 나갈 수 있는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행사장으로 이동을 하려는 데 저 멀리 군인들이 줄을 지어 이동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우리 아들이 있는가 싶어 한 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저기 몇 중대 몇 소대인가요?" "XX중대 XX소대입니다" 누군가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에고 우리 아들 소대보다 뒷 소대네... 우리 아들은 지나갔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무리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렴풋이 보인 깃발은 아들의 소대처럼 보였습니다. "저기 몇 중대 몇 소대인가요?" "AA중대 AA소대입니다" 아들이 속한 무리였습니다. 급히 아들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다들 군복을 입고 마스크를 하고 있어 아들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허리 쪽에 손을 내리고 흔들고 있는 아들 녀석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아들 사랑해. 엄마 아빠 왔어 이따가 보자!" 다른 사람의 눈은 신경도 안 쓰고 크게 외쳤습니다. 어렴풋이 아들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무리와 함께 행사장으로 이동하였고, 우리 부부는 얼른 행사장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아들을 좀 더 빨리 보겠다는 욕심에 행사장의 맨 앞에 자리를 정했습니다. 그날을 다른 날과 달리 춥고 게다가 비도 보슬보슬 내리는 악천우였지만, 개의치 않고 앞자리로 정했습니다. 아들이 서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팸플릿도 받아오고, 아들이 걸어 들어오 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사 시작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고 군인들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완전 당나라 군대네 오와 열도 하나도 안 맞고 발도 안 맞추고..." 이렇게 투덜대는 저를 보고 마누라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조용히 해요!"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별 기억도 안나는 행사가 진행되었고, 드디어 아들을 마주 대할 수 있는 태극기 휘장과 계급장을 달아주는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한걸음에 아들에게 달려가 아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들도 마찬가지로 눈시울이 붉어지며 굵은 눈물을 소리 없이 뚝뚝 흘리더군요. '우리 아들 고생 많았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을까, 엄마 아빠는 또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만감이 교차했지만, 아들에게는 표현하지 않고 "아들 고생 많았다. 많이 보고 싶었어. 사랑한다."라고 말하곤 아들을 왈칵 안아 주었습니다. 아들의 소리 없는 흐느낌이 느껴졌습니다. "아참 태극기 휘장과 계급장을 달아 줘야지, 어디에 달아 주면 되니?" "이쪽에 달아주시면 됩니다." 아들이 군대식 용어를 쓰며 위치를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 아들 이제 군인 다 됐네.... 됩니다.라고 말하고 하하하" 아내는 옆에서 조용히 흐느끼며 휘장과 계급장을 달아 주는 저와 아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습니다. "마누라도 우리 아들 좀 안아봐!"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했다 고생했어 사랑한다 아들~~""넵 저도 사랑합니다.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잠시 만남을 갖은 후 다른 행사를 위해 잠시 부모님 석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뭔 다른 행사가 있었지만 기억도 안 납니다. '얼른 아들한테 달려가 아들의 손을 붙잡고 차로 뛰어가야지"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들의 면회를 위해 우리 부부는 근처 호텔을 오래전에 예약을 했었습니다.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아들 성격상 여러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음식점보다는 조용한 호텔이 좋을 듯해서 예약한 것이지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모든 행사를 마쳤습니다. "부모님은 아드님과 면회를 시작하셔도 됩니다."라는 행사 멘트를 듣자마자 쏜살같이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들에게 달려간 후 아들의 손목을 붙잡고 주차장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저 동기들과 사진 찍기로 했습니다." "아들, 그건 나중에 다시 찍을 시간이 있을 거야. 지금은 널 빨리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힘들겠지만 좀 달리자." "네, 아빠." 아들과 저는 같이 주차장 쪽으로 달렸습니다. 아내는 좀 뒤쳐서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쫓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아들과 아내를 태운 후 훈련소를 빠져나온 후에야 안도가 되었습니다. 속으로는 '이대로 아들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갈까!' 싶기도 하였지만, 예약해 둔 호텔을 찾아 이동하였습니다.

호텔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아들의 변한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대 전 푸짐했던 살들은 모두 사라지고, 탄탄한 근육질에 건강한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이 빠져서인지 제법 군복 입은 태가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엄마, 아빠 저 살 많이 빠졌죠? 한 12킬로 빠진 거 같습니다." 아직 사회용어와 군대 용어가 헷갈리는 가 봅니다. "저 군대 들어와서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에, 훈련도 열심히 받고, 음식도 조절하고, 따로 운동도 하고 있어요. 동기들도 좋고요. 내무반시설도 좋고, 뭐도 좋고, 뭐도 좋고요...." 평소 우리 아들은 과묵한 편이었습니다. 표현이 적은 아들이어서 섭섭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아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아픈 데는 없고? 내향성 발톱 때문에 고생한다고 했었잖니. 좀 어때?" "네 아픈 데는 없고, 내향성 발톱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훈련은, 훈련은 힘들지 않았고? 각개전투는 힘들었지? 20Km 행군도 힘들었지?" "네 힘들기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습니다." "엥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더?" "네 저의 소대는 절반 이상이 포기했습니다." "발에 물집 같은 거 생기지 않았어?" "네 전 안 생겼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냈습니다." "그래 잘했다. 자랑스럽다 내 아들."

점심식사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아들을 방에서 쉬게 하고자 호텔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 아들의 군복을 곱게 게는 모습을 보곤, '세상에나 집에서는 아무 데나 갈아입은 옷을 팽개쳐 두던 그 아들 맞아?'라고 생각할 한큼 각을 잡아서 군복을 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베레모를 벗는 순간 놀라고 말았습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옵고."의 한용운의 승무가 연상될 만큼 바짝 머리를 깎은 아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헤헤 귀찮아서 동기에게 바짝 깎아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편한 옷을 갈아입고, 아들이 먹고 싶다던 각종 과일을 펼쳐 놓고 도란도란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쏟아내었습니다. 훈련에 대한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 훈련 중의 에피소드, 다른 동기가 포기할 때 나도 포기할까 했지만 이겨내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이야기, 동기들과 재미있었던 이야기 등등 아들이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원래 우리 아들은 이런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일어나라!" "네" "밥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일찍 자라. 게임은 적당히 하고." "네" "오늘 저녁 같이 할 수 있니?" "네 또는 아니요 누구와 약속이 있습니다." 이 정도의 말이 대부분일 정도로 말수가 적은 아들이었거든요. 그랬던 아들이 궁금해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요. 엄마의 마음도 살펴가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뭐 별거 아니었다며 애써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저것 궁금해하는 엄마의 질문에도 최대한 자세히 상세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놈이 이제 다 컸네. 역시 군대에 오니 생각이 깊어지는구나' 싶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제 그만 물어보세요."하고 대꾸했을 만한 것들이 많았음에도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서 쉽게 설명하는 모습이 이뻤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답시고, 엄마 앞에서 팔 굽혀 펴기를 20회 이상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심을 시키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아들을 다시 훈련소로 들여보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정말 보내기 싫었지만 아들을 훈련소로 다시 보냈습니다. 들어가기 전 아들은 다시 한번 우리 부부에게 경례를 하며 다시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고 황급히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 우리 아들이 많이 큰 거 같아. 애기가 청년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슬퍼 우리 아기가 청년이 된 게..." "뭐가 슬퍼 어린애에서 씩씩한 청년이 되었구먼. 엄마가 걱정할까 마 그 말 없는 놈이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 주더구먼." "그러니까 그게 더 슬퍼." "아니 그건 슬픈 게 아니고 대견한 거야. 그렇기 받아들여."

그렇게 우리 부부의 첫 면회는 끝이 났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희리산 봄 캠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