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치기

by 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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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지구를 블루마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주의 저편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예쁜 푸른 구슬처럼 보인다고 붙인 별칭이다.


요즘은 별로 볼 수 없고 일부에서 구슬을 사용하고 있다. 구슬은 순수한 유리로 만든 알사탕구슬, 속에 여러가지 빛깔을 집어넣은 이쁜 구슬, 쇠구슬(자통차 베어링에서 추출한) 그리고 어린시절 만저볼 수 없었던, 금구슬, 은구슬, 옥구슬, 최강의 구슬인 여의주 등등.


지금은 구슬이라는 표현보다는 비즈라고 많이들 부르는 것 같다.


70년대 어린 시절 구슬은 아이들에게는 보물처럼 모으는 수집아이템 중에서는 최고였다. 수집을 하기 위해서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구슬치기, 홀짝 맞추기 등등의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 아이의 손에서 저 아이의 손으로 넘어다녔다.


나는 구슬치기도 곧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 몰래 친구들에게서 따온 구슬을 장독대 한켠의 비어있는 항아리에 모아두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엄청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아이고 이넘이 나중에 뭐가 되려고 친구들 구슬을 다 여기 항아리에 쳐박아 두었냐!”

그리고는 역시 매서운 손으로 내 등짝을 두드리셨다.

“아얏, 엄마 친구들하고 구슬치기해서 딴 것들이예요!”

“아이고 네가 뺏은거나 마찬가지지, 왜 친구들 구슬을 탐냈냐!”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께서 늙으막에 얻은 귀한 막내딸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며 보살피셨고, 큰이모님들과 외숙부님들께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서 어린적 어머니는 공주쳐럼 커서 친구들과 내기나 구슬치기 같은 딱먹기 등의 놀이에 대해서는 젬병이셨다.

“엄마, 그 녀석들도 내 구슬 많이 따가기도 했어, 물론 내가 다시 따왔지만, 아이 등짝 이퍼죽겠네!”


구슬치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근 구멍을 만들어서 참여하는 친구들의 구슬들을 그 구멍에 다 집어넣고 순서대로 한 사람씩 5~7보 밖에 선을 그어놓고 서서 그 구멍안의 구슬들을 맞춰서 구멍 밖으로 나간 구슬들은 내꺼로 만드는 구슬치기도 있었고, ㅗ 모양의 각 모서리와 중앙에 총 네게의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에 구슬을 집어넣어 4곳의 구멍에 다 구슬을 굴려 집어넣으면 승리하는 구슬게임도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그 구슬놀이를 ‘알롱구리’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알롱구리’를 하기 위해서는 구슬을 굴리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초보자는 엄지와 중지를 겹치고 나머지 손가락을 가볍게 쥐고 겹친 엄지와 검지 손가락 중 엄지손가락 위에 구슬을 올려 놓고 가볍게 튕기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초보자나 손가락이 작은 아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거기에 중급으로 올라가게 되면 엄지와 중지를 겹치고 그 사이에 구슬을 올려 가볍게 튕기는 방법도 있었다. 이 방법은 구슬 좀 굴려본 아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구슬굴리는 손기술만 보면 ‘흠 저놈 제법 구슬 좀 굴리네.’라고 속으로 상대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다.


구슬치기는 공터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동네아이들 배틀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도 구슬치기로 같이 어울리며 통성명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곤 했다.


70년대 당시에는 서울로 많은 이주민들이 몰려들어오는 시기였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울에 대해 민감했다. 허기사 70년대 개발시대를 맞이하여 각종 공장들이 우후죽순 마냥 생겨났고, 거기에 필요한 인력들이 모자라 각지에서 돈을 벌기위해 서울로 몰려들던 시기 였다. 그러기에 공터에는 일나간 부모님이 남겨논 아이들이 몰려나와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공터 한켠에는 항상 뽑기아저씨, 떡뽁기 아줌마들이 리어카에 조그만 탠트에 앉아 아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약장수 아저씨들이 와서 재미난 구경 거리를 만들었다

“자 오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그런 약이 아닙니다. 이 약 한 번 잡솨봐….”

대부분의 약장수 아저씨들은 여기까지의 대사는 거의 똑같았다. 그러나 “좝솨바” 다음의 약들은 천차 만별이었다. 지금 생각나는 건 정력제도 있었고, 회충약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중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는 기억은 회충약이었다.

“이 회충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잡수면 바로 회충이 뒤로 나옵니다.” 그리고는 어떤 아이에게 회충약을 먹였다. 그랬는데 잠시 후 아이가 엉덩이가 간지럽다고 하니깐, 그 사람 많은 공터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드러냈다. 그랬더니 아이의 엉덩이에 뭔가 콩나물들이 꿈틀꿈틀하면서 나오려는 것이 보였다. 충격이었다. 그당시에는 ‘월야의 공동묘지’ ‘천년호’만 봐도 무서워서 밤새 잠못 이루던 그런 때 였는데, 그 아이의 엉덩이에서 기어나오는 하얀 지렁이같은 것들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장면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내 뇌리에 남아 있다.


70년대 그 당시에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 시절 이쁜 구슬을 보며 ‘난 커서 돈 많이 벌어서 아버지 어머니께 맛있는 거 많이 사드려야지.’ 또는 ‘난 커서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과학자가 되야지.’ 지나가는 제트기를 보면서는 ‘난 커서 꼭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야지.’ 같은 다양한 꿈을 꾸었다. 지금처럼 볼 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책 또는 흑백티비외에는 별 볼거리가 없던 시절, 많은 상상을 하며 놀이를 변형하고 그 놀이에 집중하고 내일은 그 놀이를 이렇게 해 봐야지. 하고 복기하며 재미나게 지냈던 것 같다.


2023년 나는 내 아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사람은 너무 시각적인 정보만 아무생각없이 받아들이면 안된다. 차라리 멍하니 지내는 시간도 있어보고, 이런 저런 공상, 상상도 해보고 너의 머리를 바쁘게 해봐. 너무 핸드폰만 바라보지 말고.”


70년대 이런 저런 상상 중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있었을까? 잠시 그때 그시절의 추억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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