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터 나는 순댓국밥에 진심이었다.
처음 내가 순댓국밥을 먹어본 것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모래내 시장에 장을 보러가서 어머니와 함께 먹어본 것이 나에게는 순댓국밥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 이전에 먹어봤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의 기억을 처음으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 맛본 순대국은 여러 돼지 부속과 순대가 들어 있고, 국물은 잘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이 많아서 어머니와 나는 한그릇을 나눠 먹었다.
“엄마 이거 머야. 먼 국인데 이런 맛이 나?”
“어, 이건 순댓국밥이라는 거야. 맛있지? 많이 먹어.”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순댓국밥보다는 훨씬 더 많이 짜장면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던 코흘리게가 커서 어느덧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그 군대에서 일이었다. 군대에서의 일로 인해 청주 근방으로 출동을 나가게 되었을 때, 저녁 무렵 외출했던 부대관련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순댓국을 포장해왔다.
“출출할텐데 이것 먹고 근무해.”
우리는 부리나케 포장봉지를 열고 순댓국을 꺼내고 몇 놈은 주방으로 가서 찬밥덩이를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댓국에 밥을 말고 맛있게 먹었다. 별도로 포장해온 순대와 모듬수육 역시 맛났었다. 나중에 일이지만 청천순대국밥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얼마 지나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였다. 우리회사 건물 건너편 일층에 순댓국밥집이 생겼다. 순댓국밥에 진심이었던 나는 점심 뿐만 아니라 저녁에 순댓국을 안주로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그 집은 순댓국뿐만 아니라 오소리감투, 애기보 수육도 있었는데, 순댓국 맛보다 오히려 오소리감투, 애기보, 모듬수육이 훨씬 맛있었다. 가격도 적당하고 양도 단골손님이 되다 보니 주인장 아저씨과 친해지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두배 이상 되니 이곳처럼 술마시기 편한 곳도 강남 한복판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들르게 되었다.
그당시에 주인장도 순댓국밥 집인데 손님이 순댓국보다는 수육과 오소리 감투, 애기보 와 같은 술안주가 더 맛있다고 하니 속이 상해 있었던 상황이었다.
어느날 내 자리 옆에 앉아
“술 한잔 따라줘봐.”
“사장님 무슨 일 있어요?”
“잘 다니던 회사 명예퇴직하고, 집도 팔고 퇴직금도 쏟아부은 이 순댓국밥 집인데, 순댓국밥은 평범하고 술안줏거리가 더 맛있다고 하니 참내…”
역시 내 입은 정확했다. 당시 그 순댓국밥집은 공장에서 권한 순대를 사용하여 순댓국밥을 손님께 내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차별성이 별로 없었다.
사장님이 술잔을 비우고 내미는 잔을 받아 소주를 채우곤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나도 순대맛은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데, 그 공장에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응 마져, 그렇지 않아도 나만의 래시피를 찾으려고 이것 저것 시도하고 있어. 잠깐만.”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뭔가를 여러 접시에 나눠 가지고 오셨다.
“이거 한 번 맛봐바.”
사장님이 각기 재료를 달리하면서 만든 순대들을 가지고 나오셨던 것이다.
“사장님, 우리가 자주 와서 술마시면서 품평해드릴께요.”
“그래 자주 와서 맛 좀 봐줘.”
다음날 부터 거의 저녁에는 그 순댓국밥 집으로 향했다. 여러가지 순대들을 맛보며 친한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사장님, 순대에 청향고추나 매운거를 좀 넣어보면 어때요?”
“응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얼마후 간만에 방문한 순댓국밥집 사장님이 주문도 하기 전에 순댓국밥을 가져다 주셨다.
“에이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이거 한번 드셔봐.”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사장님이 권하셨다.
“우와 이거 뭐야. 이제껏 먹었던 순댓국밥 맛과는 아주 다른데요. 맛있어요.”
“이제 좀 찾은 것 같아.”
그 후 그 사장님은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가는 순댓국밥집 사장님으로 유명세를 탔고, 건물도 올리시고 돈걱정은 안하시고 지내신다고 아들에게 전해들었다.
가끔 들르는 예전의 그 순댓국밥집을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갈 때마다 사장님의 안부를 묻는데 연락처를 안 가르쳐 준다.
“아버지 핸드폰 연락처 좀 알려줘.”
“안돼요. 아저씨랑 아버지 만나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절대 안되요. 아버지 건강하시니깐 걱정하지 마시고요.”
‘매정한 넘, 지 아버지하고 내가 어떤 사인데…’ 한편으로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들의 효심도 조금 부러웠다.
거의 3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외식보다는 집밥을 주로 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순댓국밥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집 주변에 있는 순댓국밥집들은 나의 입맛을 끌지 못했다.
그렇게 맛있는 순댓국밥집을 찾던 나는, 최근에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소박한 순댓국밥집에 기대 없이 방문하게 되었다.
“사장님, 여기 순댓국밥 2개 주세요.” 나와 마누라가 먹을 순댓국밥을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댓국밥이 나왔다. 초견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순댓국밥이었다. 냄새를 맡아봤다. 깊은 곳에서 은둔고수의 향이 풍겨나왔다. 돼지 잡냄새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 것이었다. 수저로 한 국물을 떠서 마셔보았다. ‘우와, 이 깊고 깔끔한 맛은 뭐지?’, 내용물을 수저로 휘휘 저어서 살펴봤다. 일반 순댓국밥집의 2배 정도는 될 법한 고기과 내장과 순대가 그득했다. 게다가 깍뚜기와 김치도 제법 풍미있었다. 실은 그 순댓국밥집을 들어가게 된 것도 주인장이 김장을 직접하고 있어서였다. 집에서 만든 김치맛이 났다. 정갈했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김치였다.
그집에서 순댓국밥 맛에 한번 놀라고, 김치와 깍두기 맛에 또 한번 놀랐고, 결정적으로 다른 집과는 차별된 장 맛에 놀랐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충청도식 ‘집장’의 맛이 그 집 장에서 났다.
“사모님, 고향이 충청도쪽이세요?”
“아니, 난 경상돈데요!”
“어 이상하다. 이 장에서 충청도쪽 맛이 나는 데요?”
“귀신이네, 나는 경상도 사람이지만 내가 장을 배운 시어머니는 충청도 분이셨어.”
“그럼 그렇지 이 장맛은 충청도 계룡산 근방쪽에서 담그는 집장 맛이예요. 하하하.”
그날 부터 나는 그 집의 단골이 되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이 오거나 회사일로 방문하는 사람이 있거나 무조건 그 집에 데려가서 순댓국밥을 맛보게 해준다. 심지어 다른 친구넘들이 초대를 하더라도 그 집에서 술국등을 포장해서 가지고 가기도 한다.
어제는 어머니께 순댓국과 집장 한병을 가져다 드렸다.
“엄니, 이 순댓국 정말 맛있으니깐 드셔 보셔요.”
“고마워, 오늘 저녁에는 그냥 입맛이 없어서 누룽지 끓여서 먹으려고 했는데. 잘됐네.”
“그리고 이 장 한 번 맛 보세요. 예전 외할머니 집장 맛이 나요.”
어머니가 새끼 손가락으로 집장을 조금 찍어 입에 넣어 보시곤.
“야 흉내는 낸것 같은데 외할머니 그 맛을 못쫒아가지.”
“엄니 외할머니랑 비교하면 안되지 요즘은 이렇게 비슷한 맛도 찾기 힘들어요.”
“암튼 잘 먹을께. 머 좀 먹고가지.”
“엄니 나 일하다 나왔어, 며칠있으면 설날이니까 그때 뭐 같이 있을 텐데.”
그래 조심해서 가라.
어렸을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순댓국밥집에 처음 방문해 어벙벙해 했던 그 아이가 커서 추억의 맛을 찾아 꼬부랑 할머니가 된 어머니께 젊은 날을 기억할 수 있은 음식을 가져다 드린 것이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여간 쓸쓸해 보이는 어머니께 그나마 추억을 선물하게 되어 다행이라 위안하며 나는 귀가 했다.
우리 아버지도 순댓국밥 좋아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