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머신을 켜는 것부터 시작한다. 커피 머신이 예열되는 동안 간밤에 매말랐던 몸을 시원한 생수로 달래면서 커피머신이 예열되기를 기다린다.
총각시절부터 해외 출장이 잦았다. 처음에는 외국의 커피가 너무 찐하고 맛이 없다고 느꼈었다. 허기사 그당시 난 커피 세 스푼, 설탕 세 스푼, 크림 세 스푼의 일명 싸나이 커피 3:3:3 을 즐길 때 였다. 단맛과 크림맛이 커피의 향과 맛을 다 날려버렸다는 것을 모른체 20세기에는 그렇게 커피를 마셨다.
아버지도 무척 커피를 즐기셨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최애 커피는 초이스커피 였고, 그 쓰디쓴 커피만 한 수푼 커피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셨다. 하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티 스푼으로 천천히 휘저으시며 향긋하게 퍼지는 커피의 향을 즐기셨다.
“아빠, 이 쓴 걸 왜 먹어?”
“하하하 너도 크면 이 맛을 알게 될꺼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커피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당시 IT 를 업으로 삶은 사람들이 다 그러했겠지만, 아니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매일 같이 야근에 밤샘작업에 시달렸다. 그런 일이 없을 때는 새로 발표된 권고집이나 논문을 보거나 해외에서 발간된 IT관련 잡지, 책을 읽어야 했다.
왜 그런걸 책을 읽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면 되지!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나의 신입사원 시절에는 인터넷이 아주 초기 단계였고, 그당시는 모뎀을 통해 인터넷에 간신히 접속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해마다 발표되는 IEEE 권고집이 있다. 내가 신입시절 선배가 이번해 IEEE 권고집 두 달 내 다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 물어본다고 하면서… 속으로 난 ‘뭔 책한권을 달달 외우라는 거야? 권고집을 읽는데 두 달이나 시간을 주다니 참 착한 선배다’라고 생각하고 서고로 갔다.
아뿔싸, 그 권고집은 한권이 아니었다. 거의 책장 하나에 가득찬 책 더미 였던 것이다.
“두달 내 그거 보고 옆에 있는 작년 재작년 꺼 정도는 여름 되기 전에 다 읽어야 한다.”
내가 입사한 날이 1월 1일부, 자대 배치 받은날이 3월 1일 그런데 서고 3개에 가득찬 책을 여름이되기 전에 다 읽으라고?
난 거의 2년 동안 첫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해서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회사일과 반강제적 공부를 하다보니 항상 졸음과 피곤에 시달렸고 지금처럼 카페인 음료가 없었던 시절 커피는 나에게는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내가 커피 맛에 본격적으로 눈을 뜻 것은 남미 쪽에 장기 출장 갔을 때 부터 였다. 같이 출장을 갔던 선배가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로비에 항상 커피를 가져다 놓는거 다 알지? 그 커피가 너무 찐해서 뜨거운 물을 좀 달라고 해서 섞어서 마셨는데, 너무 좋은 거야. 한번 해봐.”
지구 반대편에서 시차적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는 당장에 달려가 그 커피를 선배가 권한 방법대로 마셔보았다.
신세계였다. 쓴맛, 단맛, 고소한맛, 약간의 산미 등이 입안에서 폭발하는 것이었다. 몇개월 동안 머물면서 그 커피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꼰빠냐, 카푸치노 등 다양한 커피의 맛에 눈을 떴다. 어느정도 였냐면, 귀국길에 트렁크 하나를 더 사서 거기에 커피 원두를 종류별로 구입해서 가득 채워서 한국에 돌아왔을 정도였다.
어느덧 초이스 커피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이제는 울 큰아들이 만들어준 커피가 제일 맛있어.” “어디 좋은 데 가서 비싼 커피 마셔봐도 아들이 만들어주는 커피 발끝에도 못 쫓아가.”
“아부지, 아부지가 아들콩깍지가 아직 덜 벗겨져서 그래요. 물론 밖에서 파는 커피보다는 훨씬 좋은 원두를 사용하고 맛있게 내렸으니 다르기야 하겠지만요. 하하하”
오늘도 난 커피를 내린다. 내 커피를 내리면서 아내의 커피도 함께 내린다. 아버지 커피도 내려드리고 싶은데…
은은하게 커피향이 퍼지면서 어서 빨리 하루를 시작하라고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