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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일라 Nov 17. 2023

호주에서 한국 음식 하기

친구따라 오세아니아 속으로-9

이번 브리즈번 여행에서는 친구네 집에서 지냈다. 친구네 집에는 홈메이트들이 있어서 북적북적한 저녁 식사를 할 때가 많았다.


이 날은 홈메이트의 친구도 놀러와서 5명이 되었다. 저녁을 하려고 냉장고를 보니 캠핑할 때 먹으려다가 빼먹고 놓고 간 돼지 목살 고기가 있었다. 아닛?! 이것은 목살 김치찌개를 하라는 거다. 메인 음식은 목살 김치찌개로 정해졌다.


그리고는 다같이 마트로 갔다. 식재료를 보며 각자 만들 메뉴를 정했다.


“내가 호박전 부칠게.”

“브로콜리 제가 삶을게요.”

“오이 무칠게.”


아, 메인 음식인 김치찌개는 아무도 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해야겠구나.

“그럼 김치찌개는 내가 할게!”



예전에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숙소에서 요리를 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주방의 도구부터 화력, 재료 등이 달라 음식을 제대로 망쳤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낯선 주방에서 메인 요리를 하는 건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김치찌개만 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면 내가 해보는 수 밖에!

다행히 나에겐 나만의 요리책이 있었다. 평소 요리하고 맛있게 된 날은 조리 방법, 양념장의 비율, 재료의 양 등을 메모장에 적어두었었다. 이걸 참고하면서 하면 중간은 가는 음식이 나오지 않을까?


애정하는 우리 집 전골 냄비. 초대요리 할 때는 항상 써왔다. 사진처럼 부대찌개를 비롯해 전골 요리, 찜 요리할 때 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모장은 도움이 안 되었다. 음식을 망칠까봐 불안할 때 보는 심리 안정용이었을뿐 김치찌개는 내가 원하는 맛은 아니었다.


일단은 초대 요리를 만들 때 항상 쓰던 내 전골 냄비가 여기엔 없었다. 친구 집에선 주물팬으로 찌개를 끓여야 했는데 나는 주물팬으로 고기만 볶아봤지 국물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양 가늠이 잘 안 되었다. 게다가 고기까지 너무 많았다. 600g이 원래 이렇게 많았나? 호주 사람들은 손이 커서 한 주먹이 이렇게 많은 건가! 이게 김치 찌개인지 고기 찌개인지 모르겠네. 고기가 많으니 김치도 더 넣고 물도 좀 더 붓고 감에 의존하여 요리할 수 밖에 없었다.



원하는 맛을 낼 수 없었던 두 번째 이유는 공간적 제약이 있었다. 화구는 2개인데 이걸로 김치찌개도 끓여야하고 호박전도 붙여야 하고 계란말이도 말아야하고 브로콜리도 삶아야한다. 우리 집은 육수를 만들어서 찌개를 끓인다. 육수를 만들려면 화구를 오래써야 한다. 그러면 다른 요리도 늦어지니 밥을 더 늦게 먹게 된다. 맛 보다도 우선은 화구를 빨리 쓰고 다른 음식을 할 수 있게 비켜주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맹물로 찌개를 끓였다.


마지막 이유는 간장이 달랐다. 나는 늘 국간장으로 찌개 맛을 낸다. 친구 집에는 국간장이 없어서 일본 간장을 넣었다. 조리 방법과 넣은 재료가 달라지니 아무래도 집에서 해 먹던 맛은 아니었다. 나는 김치찌개만큼은 엄마 맛을 내는데 이건 아빠 맛이 난다. 아빠가 엄마 없을 때 다 때려 넣고 끓이는 맛.



좌) 완성된 김치찌개.  우) 친구랑 같이 김 넣고 만든 계란말이.
아이고, 다들 애썼다. 해외에서도 이런 밥상 가능하다.


그래도 다행히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아빠 맛인데도 잘 먹어주다니 천사들이다. 맛은 내 성에 안 차지만 해외에서 이렇게 요리를 또 언제 해보겠나 싶다.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그건 좋았다.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나의 요리 사진 모음집에 드디어 해외판이 생겼구나. 언젠가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 장인의 경지까지 가고 싶다. 마음만큼은 요리왕 비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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