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여행기-3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 꽂히면 무한 반복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글을 막 떼었을 무렵에는 동화 <신데렐라> 에 빠져 가족들에게 매일 읽어달라고 했고, 누가 놀러 오면 그 사람에게도 읽어달라고 했다. 그뿐인가. 혼자서도 끊임없이 읽었다고 한다. 엄마는 족히 1000번은 읽어준 거 같다고 징글징글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이 버릇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초등학교 시절 몇 권의 책에 빠졌는데, 그중 하나가 <안네의 일기> 였다. 안네가 은신처에 숨게 되는 과정이 강렬해서 자주 찾아보게 되었던 거 같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스릴러 장르의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안네가 숨어있던 곳을 직접 가보고 싶었다. 막연하게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그곳으로 떠나보려고 한다.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uis)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uis) 은 2차 세계 대전 때 유대인 안네와 가족들이 독일 나치당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피해 은신했던 곳이다. 실제 은신처가 지금까지 남아 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다. 이곳은 매진이 잘 되는 인기 많은 장소이다. 방문 날짜로부터 6주 전 화요일 오전 10시(네덜란드 시각 기준)에 표를 구입할 수 있으니, 방문 날짜로부터 6주 전 화요일이 언제인지 확인하고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표를 예약할 수 있다. 시간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5분 간격으로 예약할 수 있다.
☞ 네덜란드 뮤지엄 패스(pass) 로 안네 프랑크의 집은 이용할 수 없고,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한다. 안네 프랑크의 집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방문 날짜로부터 6주 전 화요일이 언제인지 확인하고, 한국 시간으로 화요일 오후 5시에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표를 예약할 수 있다.
1940년대, 안네의 은신처는 안네의 아빠 오토 프랑크의 회사 사무실 뒤로 이어진 건물에 있었다. 그래서 박물관에 가면 회사 사무실로 쓰였던 방과 은신처로 쓰였던 방 모두를 볼 수 있다. 박물관에 입장하면 1층과 2층은 회사 사무실로 쓰였던 방들로 이어진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1940년대 당시 사무실의 모습을 추정하여 만든 사진과 현재 위치를 표시한 그림만 찍었고, 그 사진을 함께 올린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폭이 좁고 위로 높은 형태의 건물을 짓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오래된 건물에 가면 계단이 매우 가파르고 비좁다. 은신처 입구에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안네의 일기에 계단에 대한 묘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 보게 될 줄이야!
은신처의 입구에는 책장이 있다. 원래는 책장이 없었지만 은신처를 더 숨기기 위해 책장을 놓았다고 책에 쓰여있다. 실제로 당시에 썼던 책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신처 입구에 전시를 위해 고정해 놓은 책장이 있었다. 책장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책장 속에 숨어 사는 기분은 어땠을까?
책장 옆 계단을 올라가면 3층 은신처로 갈 수 있다.
안네 프랑크의 집은 은신처 건물 한 채만으로 박물관으로 사용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해서 인지 은신처 건물 옆에 새 건물이 함께 있었고, 입장과 퇴장을 새 건물에서 하도록 연결된 구조였다. 은신처를 다 보고 새 건물 쪽으로 이동하면, 실제 안네가 키티에게 쓴 일기와 안네 가족의 은신처가 신고된 서류 등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안네의 은신처 공간은 한 층당 30평대로 서로 계속 붙어있을 정도로 좁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간이 지금보다 넓었다고 해도 불편함은 여전히 같았을 것이다. 화장실 한 번 편히 가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 바람 한 번 제대로 쐬지 못하며 지내야 한다면 아무리 넓은 100평짜리 방에서 살았다고 한들 편할까. 구속과 제약이 없음에 감사하다. 지금의 자유로운 삶에 익숙해져, 공간이 주는 안락함에서만 편안함의 이유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안네의 일기를 다시 읽고 은신처를 돌아보며 그동안 놓치고 살던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자유로운 지금에 감사하며, 보람차게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은 누군가가 꿈꿨던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