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여행기-12
알프스 설산을 보니, 처음 유럽을 여행했을 때가 떠올랐다.
슬로베니아 소도시 블레드(Bled) 를 여행할 때 일이다. 블레드(Bled) 는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Ljubljana) 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블레드 호수(Lake Bled) 주변의 작은 마을이다. 알프스 산의 빙하수가 호수에 흐르면서, 호수 물 색깔이 영롱한 옥빛을 띠고 있다.
블레드 호수 가운데에는 섬(Bled Island) 이 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섬(Bled Island) 까지 다 나오는 블레드 호수(Lake Bled) 를 찍고 싶었다. 그런 사진 명소를 찾다 보니 오이스트리차(Ojstrica) 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따로 명소로 등록되어있지 않았어서 구글 맵으로 주소를 검색하여 갔었다.
그날, 나는 배웠다. 구글 맵 너무 맹신하지 말자!
구글 맵에는 고도가 나오지 않는다.
나의 현재 위치는 지도만 보면 목적지 바로 앞이었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길이 안 보였던 이유는 바로 산 길을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마을까지 잘 이어지던 길과는 다른 숲 속이 갑자기 나오니까 그때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 길 찾는 게 어려웠다. 방향을 맞춰 차근차근 길을 보니, 저 너머 나무 사이에 오르막 길이 보였다. 저 산길을 올라야 하구나? 주변에 사람도 없고, 갔다가 뭔 일 나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됐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올라가 보고 다시 생각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샌들로 산을 올랐다.
등산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야산의 길이었다. 경사가 매우 급하고, 간간히 푹 빠지는 흙들이 있어서 오르는데 애먹었다. 나중에 내려올 때 이 산을 오르는 한 외국인 여성을 보게 되었는데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고 있었다.
‘하루 종일 트레킹해도 괜찮아하는 외국 사람들도 저렇게 숨 헐떡이게 되네. 여기 힘든 곳 맞았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정상까지 멀었나요?”
나는 아주 기쁘게 대답해 줬다.
“매우 가까워요! 힘내요!”
“고마워요!!”
힘차게 고맙다고 하며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누군가에게 힘을 준 거 같아 흐뭇했다.
산이라고 하기엔 5분 정도 올라가는 거지만, 그 5분이 매우 가파르고 길이 미끄러져 힘들다.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운동화를 신기를 바란다.
푹푹 빠지는 흙을 헤치고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올라가자, 블레드 호수와 블레드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 길을 오르기로 결정한 나 자신을 매우 칭찬했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값진 풍경은 담을 수 없었겠지. 그래서 고비가 있고 힘들 때가 있어도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여기까지 온 걸 기념하여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마침, 한 외국인 커플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분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한 장 찍고 핸드폰을 돌려주셨다. 음, 사진은 많이 찍어야 건질 수가 있거늘!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아이 워너 매니매니매니. 다다다다다다.”
나의 “다다다다다” 에 빵 터지셨다. 그리곤 정말 많이 찍어주셨다. 덕분에 블레드에서의 인생샷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지.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에서도 슬로베니아 여행 때와 같은 일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Innsbruck) 에서 피벅 호수(Piburger See) 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의 호수는 이름 뒤에 "See" 가 붙는다. 호수를 가려면 이름에 "See" 가 있는지 찾으면 된다. 피벅 호수(Piburger See) 까지는 총 1시간 50분 정도 걸리고, 기차와 버스를 환승하여 40분가량은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었다. 이 정도 여정쯤이야 거뜬하지 싶었다.
기차역에서도 잘 내렸고 역 앞에 있던 버스 정류장도 쉽게 찾았다. 320번 버스가 오는 것을 확인한 후, 현금으로 버스 요금을 내고 탔다. 그렇게 15분 정도 버스를 짧게 타고 내렸다. 이제부터 40분 동안 걸어가는 거다. 전에 슬로베니아 여행할 때 잔뜩 봤던 동유럽의 시골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있었다.
추억에 잠겨 즐겁게 걸어갔다. 그런데 길이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아뿔싸! 또 산 길이었다. 구글 맵에는 고도가 나오지 않는다. 호수도 산에 있을 줄이야! 산 길을 걷는 건 괜찮았다. 엉덩이에 힘 빡주고 하체 운동 하며 가면 금방 갈 수 있다. 문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니 오츠탈 역(Otztal) 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먹구름이 있었다. 그건 왜 전혀 보이지 않았을까. 다행히 양산 겸 우산을 가지고 있었어서 양우산을 피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비 따위가 날 막을 수 없지!
그런데 점점 빗줄기가 거세졌다. 우산을 썼어도 점점 빗물에 몸이 젖고 있었다. 산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슬로베니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났네? 소나기인 거 같아 큰 나무 아래로 잠깐 비를 피해보았다. 비가 멈추길 기다리는데 비 오는 외딴 산 길에 혼자 있으려니 으스스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30분을 걸어왔고, 10분만 더 걸어가면 목적지인 피벅 호수(Piburger See) 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이 비를 뚫고 10분 더 걸어가? 아니면 안전을 생각해서 돌아가?
이번에는 슬로베니아 여행 때와는 다르게 도전 대신 안전을 선택했다. 빗줄기가 너무 굵었고, 이미 몸이 젖어가고 있어 자칫하면 여행 내내 컨디션 난조로 다녀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려놓을 줄 아는 미덕을 배우라고 이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숲 속이라도 찍자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오잉? 굉장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왔다.
피벅 호수(Piburger See) 에서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비가 그치고 있었다. 그래, 이거 소나기 같았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 호수는 나와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에 마음에 드는 숲 속 사진도 얻고 혼자 여행하며 겪는 마음 가짐도 배웠으니 다녀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츠탈 역(Otztal) 에서 인스브루크 역(Innsbruck) 으로 다시 기차를 타고 넘어왔다. 바로 숙소로 가기엔 아쉬워 인스브루크 시내 근처의 호수를 찾아보았다. 바거 호수(Bagger see) 라는 호수가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근처 공원에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 같았다.
이렇게라도 호수와 산을 보니 좋네.
추억 여행은 다음 편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