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여행기-13
슬로베니아 블레드(Bled) 에서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낙마를 했던 일이다. 유럽 여행 전에 승마를 여러 번 경험했었고, 내가 말을 좋아하고 말 타는 것을 즐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한 번 말을 타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승마체험을 찾아보았다. 마침 블레드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승마체험은 초원을 달리는 거였는데, 내가 신청한 체험은 말을 타고 산을 트레킹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말을 타고 산속을 다니며 숲을 원 없이 봤다. 나는 꽃 보다 나무를 더 좋아한다. 외국의 나무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것도 말을 타고 바라볼 기회가 또 있을까. 초원은 아니었지만 자연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말도 두 시간이나 산길을 걸으면 지친다는 것이다. 도착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내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말이 왼쪽 다리를 먼저 접더니 이어서 오른쪽 다리가 접혔고, 왼쪽 방향으로 나와 말은 함께 넘어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 나 왜 길바닥에 엎어져있지?’
내 다리 위 말의 무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해 있던 찰나, 승마체험 가이드가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말을 일으키고 나도 일으켜줬다. 몸이 얼얼하긴 했지만 크게 다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고, 팔과 다리의 피만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낙마를 했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었다. 도착지에 거의 다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 나는 걸어서 최종 도착지까지 갔다.
체험 일정은 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이드가 낙마한 나에게 말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을 건지, 말 옆에 서서 찍을 건지 물어보았다. 말에 올라타기가 살짝 겁났지만 나는 다시 말 위로 올라갔다.
“You are a brave girl."
가이드와 같이 승마체험 했던 네덜란드에서 온 동생들이 칭찬을 아낌없이 해줬다. 여기 와서 유럽 시골에 혼자 왔다는 것도 칭찬받고, 말 탔다고 칭찬받고 칭찬을 참 많이 받았다. 가이드도 네덜란드 동생들도 나보다 다 키가 커서 내가 어려 보였나 보다. 나중에 나이를 듣더니 모두 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었다.
승마 체험이 끝나고 가이드가 숙소까지 데려다주면서 병원 가야 하지 않냐고 걱정해 주었다. 병원을 가봐야 하나 고민되긴 했지만, 내가 영어를 잘 못하기도 하고 아직 여기저기가 욱신거려서 어디가 불편한지 정확히 말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가이드한테는 약이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고 숙소에 돌아왔다.
그때가 정오였다. 숙소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더 욱신거렸다. 보통 여행자라면 이 시간에는 밖에서 돌아다녀야 하는 시간인데, 내가 너무 빨리 돌아와서 게스트하우스에 민폐를 끼치나 싶기도 했다.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는 유럽 하면 생각나는 정원이 있는 나무집이었다. 집 자체가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되어 있었다. 나무로 된 바닥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몸살이 나지 않도록 약을 먹고 잠부터 잤다. 잠자리에 드는 동안 사부작사부작 나지막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셨는데 내가 있는 것을 알고 조용히 집 안을 청소하시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한숨 푹 자고 나니 몸이 훨씬 개운해졌었다. 그 이후에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푹 쉴 수 있게 계속 배려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를 가 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였어요. 나는 유럽을 처음 방문 했습니다. 혼자 트레킹을 했고, 승마를 하다가 떨어졌었어요. 게다가 산 길에서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휴식이 자주 필요했습니다. 나를 챙겨주고 따뜻하게
맞아주어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쉴 수 있었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고, 감사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편지를 읽고 할머니께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그리곤 손가락 크기의 평평한 작은 나무판을 내미셨다. 나무판에는 소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께서 너의 모습 같다며 선물로 주셨다. 뒤에 자석을 붙여서 쓰라고 하셨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문구점에 들르는 걸 자주 잊어버렸다. 그렇게 나무판은 우리 집 보관함 한편에 놓여 있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나무판이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 도대체 어디 간 것인가. 분명 이사 오기 전까지 확인했고, 잘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하면서 어디에 놓았는지도 생각이 안 나고 정말 잃어버린 건지 그 여부를 모르겠다.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으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