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로드트립 여행기-8
이번 뉴질랜드 여행은 그동안 해왔던 여행과는 달랐다. 렌터카를 빌려 차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인원이 많아 음식을 해 먹기가 좋았다. 나는 굉장히 한국적인 입맛을 가졌다. 해외에 나가서 외식을 하면 음식이 너무 짜거나 느끼하고 양도 많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쌓일수록 현지 음식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고, 먹어보고 싶은 의욕도 없어졌다. 나에게 해외에서 먹는 최고의 밥상은 캐리어에 챙겨간 햇반과 소고기 고추장이었다. 해외에서 한식을 직접 요리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혼자 여행할 땐 재료가 남으면 처치 곤란일까 봐 본격적인 요리는 하지 못하곤 했었다. 이랬던 나에게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은 그동안 눌러왔던 요리 욕구를 샘솟게 했다.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 저녁 밥상은 내가 책임지겠다.”
입맛에 맞춰 한국에서도 철저히 한식만 하는 나는, 이번 여행에서도 한식을 요리할 준비를 했다. 식품에 대한 검열이 까다로운 뉴질랜드 공항에서 식품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 식품 목록을 만들고, 한국 양념들을 소분하여 챙겼다.
이제 챙겨 온 재료들로 차렸던 한식 밥상을 담아본다. 첫날 숙소는 백패킹 여행자를 위한 숙소라 취사가 어려울 줄 알고 비비고 실온 보관 국과 반찬 통조림들로 밥상을 차렸다.
테카포(Tekapo) 숙소에서는 본격적으로 음식을 하였다. 창밖으로 펼쳐진 그림 같은 테카포 호수를 보며 요리를 할 때의 짜릿함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김치찌개와 고기구이
김치찌개의 대부분의 재료는 내가 한국에서 챙겨 온 재료들을 넣었다. 현지 마트에서 참치 통조림과 양파만 샀다. 봉지 김치는 캐리어에서 터질 수 있어서 통조림 김치를 가지고 왔다. 동결 건조 마늘과 청양 고추는 약간의 물을 넣고 풀어주면 먹음직스러운 재료로 바뀐다. 코인 육수를 넣어 육수를 만들고, 참치, 김치, 양파, 다진 마늘, 다진 청양고추를 넣어 바글바글 끓였다. 마지막으로 챙겨 온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넣어 맵기를 조절해 주면 완성이다.
백숙
마트에 갔더니 통닭구이용으로 팔고 있는 닭이 딱 1개 남아있었다. 이건 백숙을 하라는 신의 계시다. 닭 무게가 1.6kg였다. 이 정도면 오리 아닌가? 역시 대자연의 나라라 닭도 큰가 보다.
백숙을 하기 위해 나는 한국에서 황기와 비장의 무기 오복 가위를 챙겨 왔다. 닭 껍질을 잘 벗기려면 가위가 짱이다. 외국 사람들은 이렇게 편한 주방 가위를 왜 안 쓰나 모르겠다. 백숙은 의외로 간단한 요리다. 먼저 황기를 끓여 황기 물을 만들고, 손질한 닭을 넣어 40분 이상 푹 끓이면 된다.
연어 오븐 구이와 미역국
푸카키 호수(Lake Pukaki)에 있는 알파인 연어 가게에서 구이용 연어를 샀다. 각각 500g 정도 되는 연어 두 덩이였다. 연어에 허브 솔트와 딜을 뿌려 밑간을 하고, 종이 호일을 깐 오븐에 연어를 넣었다.
숙소에 있는 오븐은 보쉬(Bosch) 라는 독일에서 나온 오븐이었다. 보쉬 오븐은 용도별로 다양한 상징 그림이 있었다. 따로 설명서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였고, 오스트리아에 거주하시는 분께서 친절하게 그림을 설명한 자료를 찾게 되었다.
연어 구이를 하기 위해 첫 번째 그림으로 오븐의 스위치를 돌려서 공기 순환 그릴 모드로 맞추었다. 주로 일반적인 구이 요리를 할 때는 이 모드로 사용하면 될 거 같다. 180도 온도로 맞추고 20분 정도 구워주었다.
미역국은 한국에서 챙겨 온 자른 미역을 물에 10분간 불렸다. 코인 육수로 육수를 만들고, 미역과 새우를 넣고 끓였다. 동결 건조 마늘에 물을 부어 다진 마늘 상태로 만들어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미역국 완성이다.
미역국은 미역만 있으면 금방 끓일 수 있기도 하고, 친구가 곧 생일이라 꼭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었다.
한 상 차리고 나서, 친구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생일 미리 축하해!”
그런데 갑자기 친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까지 눈물이 났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조용히 저녁을 먹었다. 널 울리려고 만든 게 아닌데!
생일을 맞은 친구는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지난 호주 여행 때, 나는 친구네 집에서 머물렀다. 호주는 다국적 국가답게 한국 식료품을 구하기가 매우 수월했고, 한국 음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친구가 눈물을 보인 건 단순히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었다기 보단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있을 때의 감정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며 가지는 감정과는 분명 다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유대감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친구가 호주에서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지만, 오래도록 쌓아온 유대감이 한 번씩 그리워질 때가 있었을 거 같다. 작게나마 그 마음을 어루만져준 거 같아 기뻤다.
미역국은 평소 만들 때보다 간이 심심하게 되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다들 고맙게도 잘 먹어주었다. 맛있게 잘 먹는 사람들이 있으면 음식 할 맛이 난다.
닭볶음탕
마트에서 순살로 나온 닭다리살과 당근, 감자를 샀다. 다음 날은 캐슬힐(Castle hill) 을 가는 일정으로 왕복 6시간의 운전을 해야 했기에, 미역국과 연어구이를 만들 때 미리 닭볶음탕도 함께 만들었다. 뉴질랜드 당근과 감자는 껍질이 깨끗해서 깎지 않아도 괜찮았다. 요리 과정이 그래서 훨씬 더 간단해졌다.
먼저 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당근과 감자를 썰었다. 재료 손질을 하는 동안 코인 육수로 육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결건조 마늘, 청양고추, 대파 모두 물을 넣고 다진 재료 상태로 바꾸었다. 드디어 챙겨 온 고추장을 쓸 차례가 왔다. 다진 재료들을 고추장과 국간장, 고춧가루, 알룰로스와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딱딱한 채소인 당근과 감자를 육수에 먼저 끓이다가, 닭과 양념장을 넣어서 푹 끓이면 완성된다.
테카포(Tekapo) 에서 퀸즈타운(Queenstown) 으로 이동했다. 퀸즈타운의 숙소도 주방이 있어서 요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력이 약해서 자주 하지는 못했다.
어묵 볶이
퀸즈타운(Queenstown) 은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대도시에 속한다. 그래서 한인 마트가 있다. 한인 마트에 가서 어묵과 떡을 샀다. 나는 요리를 할 때 국물을 좋아해서 육수를 많이 넣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과했다. 떡볶이 양념이 떡에 덜 배서 떡의 맛이 밍숭밍숭 했다. 떡볶이를 하려 했으나 주객이 전도되었다. 어묵이 더 맛있었다. 그래서 이번 요리는 자연스럽게 어묵 볶이가 되었다.
숙소에 주방이 있으면 여행이 한층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재료를 사서 요리한 것뿐만 아니라, 주방에서 소소하게 라면도 끓이고 간단한 아침 식사도 해 먹으며 여행의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서도 늘 하지 못했던 요리를 잔뜩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나는 해외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해외에서 요리하는 행위도 그래서 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어 기뻤고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보람되는 나날이었다. 맛있게 먹어주어 고마워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