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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Sep 18. 2023

법원에 다녀오다.

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2분이면 족했다.

“자기소개하세요.” “추가 변론 있습니까?” “마지막 변론하세요.”


우리 집은 파주다. 신도시 운정이 아닌, 군인들이 많은 문산이다. 문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전철로는 경인중앙선이 있다. 문산이 종점이고, 서울까지 완행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나는 지난 변론 기일에서 소송대리허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변론 기일이 연장되었다. 약 1달여의 시간이 지나고 변론 기일에 참석하기 위한 각종 서류를 빠른 등기 우편으로 송달하였다. 담당 공무원과 수 차례 통화하고 확인에 확인을 더하면서 이번 변론 기일을 야심 차게 준비하였다.


이 사건은 구상금 청구 건으로 약 3백여만 원이 걸린 소액 사건이다. 다른 소송과 비교하여 큰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변호사들은 이 사건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 경험한 소송이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의 주장에 반박을 담은 답변서를 보내고, 원고의 준비서면을 재반박하는 피고인 우리 측의 추가 준비서면도 송부하였다. 처음으로 소송 사건을 맡으면서 재밌기도 하고, 자칫 잘 못 하면 3백여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교대역 근처에 있다. 변론 기일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에서 아주 먼 거리를 가야 한다. 문산역에서 출발하여 교대역까지 전철을 2번 정도 갈아타고 약 2시간이 걸린다. 왕복으로 4시간이다.


변론 기일은 오후 3시에 시작하는데, 나는 오후 2시 50분에 도착하였다. 10분여 남짓의 시간 동안 서류를 읽어가면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원고 측 변호사의 주장을 멋들어지게 반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주장을 잘 듣고 내가 준비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면서 멋있는 단어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해야 한다. 속으로 몇 번을 다짐하면서 법정에 들어섰다.


판사님은 하루에 많은 사건을 판결하신다. 그래서인지 매우 피곤해 보이셨다. 지긋한 나이와 권위 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분이 앉은 높은 자리는 원고와 피고 모두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함에도 나는 기죽지 않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피고석에 앉았다.


판사님은 원고와 피고들에게 첫 번째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셨고, 두 번째로 소송장과 답변서, 준비서면 등을 언급하시면서 추가 변론이 있냐고 물으셨다. 나를 포함한 원고와 피고 모두 없다고 하였고, 세 번째로 마지막 변론을 요구하셨다. 난 짧게 2 문장으로 변론하였다. 이후 최종 선고일을 통보하시고 오늘 변론 기일은 종료되었다.


시계를 보니 3시 2분이었다. 3시에 시작한 재판은 2분이면 족했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걸려온 시간은 2시간 이상인데, 이 2분의 재판에 참석하고 앞으로 2시간 이상 걸려서 집으로 가야 한다. 2분을 위해 왕복 4시간이 필요했다.


이건 뭐지?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수십 번 머릿속을 스친다. 재판장을 뒤로한 채 전철을 타기 위해 교대역으로 가는 발걸음은 허무하였다. 원고 측 변호사의 주장을 멋들어지게 반박하기 위한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TV에서 보던 변호사 간의 논쟁을 일반인인 내가 한번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300만 원인 소액 사건인데, 헛소리해보더라도 멋있게 해 봐야지라는 나의 의지는 펼쳐 보이지 못했다.


언제 한 번 변호사와 논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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