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못이 없습니다.
“피고 3에 앉은 분은 피고의 자격이 없으니 뒤로 가서 앉으세요.”
난생처음 법원에 다녀왔다. 언론을 통해서 법원의 위용을 접한 터라 법원 앞에 도착했을 때 잘 모르는 위압감이 있었다. 하얀 건물에 좌우대칭이 맞는 건물을 보면서 화려하지 않은 권위를 엿볼 수 있었다.
회사 대표를 상대로 소송이 들어왔지만, 나와 업무가 밀접하다고 하여 내가 이 소송을 담당하게 되었다. 원고는 피고 1, 2, 3 등 3주체에게 소송을 건 상태였다. 이 소송 건으로 원고가 제기한 소장을 읽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답변서도 작성해 보았다. 법원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에 수소문하여 소송을 준비하였다. 시간이 지나 변론 기일이 다다르면서 변론 시작 30분 전 법원에 도착하였다.
지하철을 타고 법원에 가면서 드라마에서 멋지게 변론하는 변호사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 사건이 비록 소액이지만, 멋지게 판사님 앞에서 원고의 주장을 반박해 봐야지. 원고와 피고 1, 2측은 다들 변호사가 온다고 하지만, 피고 3인 나는 원고 측 변호사의 주장을 멋들어지게 무너뜨리고 판사님을 잘 설득해야지. 등 양복 입은 멋진 변호사님을 나에게 이입하며 오늘의 변론을 준비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장소를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도착하였다. 변론이 시작하는 시간은 10시 40분이었다. 나는 10분 전 재판장에 도착하여 앞선 재판을 엿들어가며 기다렸다. 이제 나의 재판이 시작될 것 같으니 미리 재판장에 들어가 바로 앞선 재판을 들었다.
재판의 진행을 도와주시는 분이 재판의 소송 번호를 불러서 재판이 시작할 것이라고 언지를 주었다. 나는 당당히 피고석에 앉아 판사님의 질문에 멋지게 대답할 준비를 하였다. 먼저 원고 측 변호사의 본인 소개, 피고 1과 2측 변호사의 본인 소개, 마지막으로 피고 3인 나를 소개하였다. 당당하고도 우렁차게, 단전 아래 힘을 강하게 주어 목소리에 권위를 부여하며 나의 소속과 이름을 말하였다.
판사님은 나를 보시며 지금 앉아 있는 피고 3은 대리인인데, 소송대리허가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니 피고의 자격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가라고 하셨다. 소송대리허가신청서?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머리가 하얘졌다. 당당하고 권위를 주었던 나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던가?
피고 3은 나의 회사 대표이사다. 나는 회사의 직원으로 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 나는 대리인의 자격으로 앉은 것인데, 소송대리허가신청을 하지 않았으니 나는 피고의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재판이 연기되었다고 판사님이 판정한 이후, 피고 1과 2측 변호사님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 변호사님은 민원실에 들어가 소송대리허가신청을 하든지, 아니면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내려받아 등기로 제출하면 된다고 하셨다.
재판장에서 당당하고 품위 있는 목소리로 변호사님들의 의견을 반박하고, 판사님을 설득하려는 나의 계획은 심각하게 어긋났다. 다행히 재판은 9월로 미뤄지면서 나의 계획은 한 번 더 성공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단전에 힘을 줄 수 있는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