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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l 09. 2023

개비린내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이 생각나는, 견디기 힘든 날씨다.


문학을 좀 ‘한다’(?) 하는 이들은 “가난한” 백석이 “나타샤를 사랑”했듯, 대개 백석과 그의 시를 흠모한다.


그런데 내게 백석의 시는 늘 빈 공간을 남겨둔다. 단지 사투리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비> 전문이다. 흔히 “물쿤”이라는 시어에서 백석의 득의(得意)를 읽어내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건 “개비린내”다.


백석 시로 학위를 하고 교수가 된 모 선생의 해석은 글자 그대로 “개의 비린내”다. “비 맞은 개”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라는 것이다. 이 해석은 많은 시인, 연구자의 동의를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근거는 아마 1934년의 《해빈수첩(海濱手帖)》 중 〈개〉인 듯하다.


“저녁물이 끝난 개들이 하나 둘 기슭으로 모입니다. 달 아래서는 개들도 뼈다귀와 새끼똥아리를 물고 깍지 아니합니다. 행길에서 걷던 걸음걸이를 잊고 마치 민물의 냄새를 맡는 듯이 제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고개를 쑥 빼고 머리를 처들이고 천천히 모래장변을 거닙니다.”


그런데 나는 이 산문과 <비>를 연관지어 생각하기 어렵다. 백석이 시에서 운용하는 시어의 짜임을 일반화할 능력도 내겐 없다. 다만, “개비린내”를 ‘개의 몸에서 나는 비린내’로 보면, “물쿤”이라는 시어와 이른바 매치가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어데서”라는 말은 단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호하지만 그래서 대단히 넓은 공간을 상정한다고 여겨진다. "온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그건 '갯비린내', 곧 개펄이나 갯가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라고 보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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