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Sep 02. 2023

한자의 고향

『한자 – 기원과 그 배경』(시라카와 시즈카, 심경호 옮김)을 읽고 있다. 너무 어려워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앞부분에 “한자의 고향”이라는 장이 있는데, 일찍이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한자의 고향이 중국이란 사실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설로서 그 점을 실증하고자 한다면 구체적으로 한자가 성립된 풍토적, 문화적 배경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하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제기다. 이후 몇 글자를 예로 들어 ‘한자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


‘문(文)’ : 이 글자가 살갗을 바늘로 찔러서 먹물 등의 물감으로 그림이나 글씨 등의 무늬를 새기는 문신 풍속을 배경으로 성립한 것이라면 그 배경이 되는 문화는 고대에 문신 풍속이 행해졌던 지역의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문신 풍속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태평양 연해 종족들 사이에 널리 분포하며, 내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년(年)’ : 이 글자는 곡령(穀靈)을 뜻하고, 그 계열의 문자들을 통해 도혼(稻魂)을 제사 지내는 농경의례가 글자의 배후에 있다고 본다면, 그러한 농경의례가 분포하는 동남아시아 일대의 문화가 그 기반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저주의 의례로 머리를 베어 제사하는 참수의 풍속을 방(放)이나 변(邊) 등의 자형들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면, 후대까지도 그 풍속이 행해졌던 동남아시아 여러 민족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조(朝)’ : 옛날에는 월(月)이 아니라 조수(潮水)를 나타내는 수(水)의 형태를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말하면, 이 글자는 조수간만의 지식을 지닌 연해 종족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몇몇 사실들을 토대로 다음의 추론을 이끌어낸다. “이로써 한자가 본래 연해종족이었던 은(殷)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 문화권 고유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인지의 여부는 둘째 치고, 이러한 관점과 추론은 넓고 깊은 연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작업이 학문이라는 말에 값하는 일일 테다.

작가의 이전글 백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