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Sep 08. 2023

백로(白露)


아침부터 「전적벽부」가 입에 붙어다. 아마 새벽에 선선한 바람으로 잠이 깨어서였을 테다. 마침 절기 백로도 며칠 전에 지났다.


“임술지추 칠월기망에 소자여객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할새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불흥이라. 거주촉객하여 송명월지시하고 가요조지장이러니 소언에 월출어동산지상하야 배회어두우지간하니 백로횡강하고 수광접천이라.~”


오래 전에 한문을 처음 배울 때, 마지막 줄의 “백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었는데, 확인하지 않고 넘어갔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

“백로횡간(白露橫江)”에서 “백로”는 크게 세 가지로 이해되는 듯하다. 첫째는 글자 그대로 '이슬'이고,  다음은 새 '백로'이며, 마지막으로는 '물안개'다. 이 구절 바로 뒤에 “수광접천(水光接天)”가 나오니, 그것과 짝을 지어 이해하면 좋겠다.  <백로-수광 / 횡-접 / 강–천>을 고려해 직역을 하면 “백로는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다” 정도로 풀 수 있겠다.

.

그런데 시간 배경은 “달이 동산 위에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는[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밤이다. 그렇다면 좀 엉성한 논리이기는 하겠으나, 이슬은 가을의 기운과 정취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대개 아침에 맺는 것으로 이해되므로, 백로를 이슬로 보는 건 마뜩지 않다. 더구나 이슬이 강을 가로질렀다는 표현도 좀 그렇다. 가로질렀다는 말을 고려하면, 백로(白露)를 백로(白鷺)라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데, 글자가 영 달라 선뜻 취하기 어렵다. 다만 백로 중 해오라기는 주로 밤에 활동을 한다는 점, 그리고 이 글이 후대에 전사되면서 오기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는 있겠다. 마지막으로 물안개다. 다음 구절 “수광(水光)”과 연결시켜보면 “백로”를 물안개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백로를 물안개로 본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걸린다.  


누군가 명확히 해결해 주면 좋겠다. 참고로 “달빛”이라고 하니 며칠 전에 읽은 최승자의 산문집 『어떤 나무들 – 아이오와 일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의 시 「기억의 집」의 “아버지의 나라 /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에서 “물빛”을 “water color”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water color”는 수채화라는 걸 잘 알면서도 시인은 “그때는 도저히 달리 어쩔 수가 없었고, 결국 “water light”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눈빛”을 “eye light”로 옮기기에는 문제가 있고, “gaze”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선한 얼굴을 한 거룩한 속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