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Oct 11. 2023

한로(寒露)


며칠 전 한로가 지났다. 찬 이슬이 내리는 계절이 온 것이다. 절기는 어길 수 없어 기온이 뚝 떨어지는 모양이다.


판소리 목을 푸는 소리로 부르는 단가 <사철가>는 이 계절을 이렇게 노래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허여..."


'상풍'은 아마 '霜楓', 곧 서리 맞아 물든 단풍이라는 말이겠다. 그런데 어느 가사에서는 "한로삭풍(寒露朔風)"이라 했다. 여기서 '삭풍'은 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누군가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물어온 적이 있었다. 처음엔 "한로삭풍"이 맞다고 대답했는데, 확신하기 어려워 좀 찾아보겠노라 했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둘 다 써도 큰 문제는 없겠다. 그 뒤에 나오는 "요란하다"와 연관지어 보면 앞에 바람이 나와야 하니 "한로삭풍"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런데 '삭풍'은 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말하니, 시방 가을을 노래하면서는 좀 어색하다. 그러나 추운 바람을 좀 과장해서 얼마든지 그렇게 노래했을 수도 있다.


한편 "요란하다"는 말이 시끄럽고 떠들썩하다는 뜻만 가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 그가 입고 온 옷은 참 요란했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모양이 지나치게 야단스럽다는 걸 나타낸다. 그렇다면 "한로상풍"도 적절해 보인다. 더구나 며칠 지나면 상강(霜降)이 오지 않는가.


그러나 어느 것을 쓴다고 해서 노래를 감상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대세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세 침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