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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Dec 06. 2023

편수


허균은 귀양을 가서, 옛적에 먹던 팔도의 맛난 음식들을 글로 써 먹었다. <도문대작(屠門大嚼)>, 곧 푸줏간 앞에서 크게 한입 씹어본다는 말이다. 허균다운 명명이다.


오늘 밤에는 편수가 먹고 싶다. 어머니 솜씨로 만든 담백한 그 만두. 편수는 개성식 만두다. 여름철 주로 호박을 넣어 만든 것을 편수라고 한다는데, 우리 어려서는 그냥 다 편수라 불렀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우선 숙주나물을 삶아 물을 꼭 짜둔 후 잘게 다진다. 두부도 으깨어 삼베 천에 넣어 물을 뺀다. 돼지고기를 잘 다져둔다. 달걀을 서너 개 풀어 둔다. 거기에 애호박, 쪽파, 양파를 잘게 다져둔다. 이맘때쯤엔 김치를 잘게 썰어 물에 씻은 다음 역시 물기를 빼준다. 이것들을 골고루 버무려(너무 버무리면 물이 생겨 안 됨) 소를 만든다.


밀가루 반죽은 적당히 찰지게 해놓고 편수피를 만든다. 너무 두꺼워도 안 되고 너무 얇으면 터진다.


물이 팔팔 끓으면, 뚜껑을 연 채로 편수를 넣고 삶는다. 거품이 일면 찬물을 살짝 뿌려주기를 여러 차례한다. 편수가 동동 뜨면 익은 것이다.


다음은 간장이다. 집간장에 물을 조금 붓고 식초, 고춧가루, 참기름, 쪽파와 마늘 다진 것을 약간 넣어 섞어준다.


대접에 편수 몇 개를 편수 삶은 물과 함께 낸다. 별도의 그릇에 덜어서 먹어도 되지만, 나는 대접에 넣은 채로 숟가락으로 편수를 약간 갈라 그 안에 간장을 넣어 먹는다.


편수가 모자라면, 삶은 물 그대로 편수 한두 개 남기고 숟가락으로 으깬 후 밥을 조금 넣고 간장을 얹은 후 비벼 먹는다.


어머니는 소를, 아버지는 피를 만들면, 우리들은 모두 빙둘러 앉아 빚었다. 큰 쟁반 서너 개는 족히 만든 것 같다. 이맘때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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