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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Dec 07. 2023

박헌영의 아들

며칠 전 친구와 여주 신륵사를 다녀왔다. 30여 년 만이다. 신륵사 주지였던,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이 생각났다. 아래는 2년 전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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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스님께서 입적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원경 스님은 '빨갱이의 원조 박헌영'의 아들입니다. 세수 81세, 법랍 62년입니다.

박헌영과 그의 둘째 부인 정순년 사이에서 태어난 스님은 부친의 잠적 등으로 고아 생활을 하다 열 살 때인 1950년 초 남로당 연락책이었던 한산 스님을 따라 지리산 화엄사에 맡겨졌고, 이후 피아골 연곡사를 지나 빨치산들과 생활하기도 했으며, 당시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박헌영이 월북하기 전, 고인은 여섯 차례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2004년 '이정박헌영전집'(전 9권)을 출간해 부친을 기렸습니다.


각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1990년 겨울, 여주 신륵사에서였습니다. 1990년 4월 엠티를 신륵사로 갔는데, 원경 스님이 거기 주지로 계셨던 것이죠. 수십 명의 회원이 1박 2일로 발표와 토론을 한 후 뒷풀이로 술 잔치를 벌였는데, 원경 스님이 모든 곡주를 내어주셨습니다. 당시 나는 일개 회원의 한 사람으로 그가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퍽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그를 만나본 첫 인상은 강인하고 호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박헌영의 인상과는 좀 다르다고 느꼈었지요.  혼자 생각에 당시 그와 나 혹은 우리 사이에 강한 끈이 내밀하고도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느꼈더랬습니다. 일이 있어 새벽에 혼자 신륵사를 빠져 나오면서 저만치서 바라본 그의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원경 스님, 극락왕생을 축원합니다.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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