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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Dec 12. 2023

“전체 빼기 1의 화해와 평화”


르네 지라르가 “희생양”이라고 한 고대 제의가 현대에 부활한 것이 이른바 “왕따”이다. 이 왕따의 정신적 토대는 끝 모를 불안이다. 그 고통을 없애고 안정을 얻겠다는 의식은 물론 일시적인 처방이다. 그래서 그 제의는 지속 반복된다.


그런데 그 불안 극복의 구체적인 방안은 어느 한 놈을 지목하여 그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함께 공격을 하면서 그들은 일시적으로 화해하고 잠시나마 평화를 경험한다.


루쉰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폭군의 신민들은 폭정이 남의 머리에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남의 참혹함을 자신의 오락으로 삼고, 남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위안을 얻는다. ‘운 좋게 걸려들지 않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능력이다. 하지만 그런 운좋게 걸려들지 않는 사람들이 폭군 치하에 있는 신민들의 피에 주린 욕망을 위한 희생물이 된다. 하지만 누가 또 그 희생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는 사람은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기뻐한다."(1919, <폭군의 신민>(『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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