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Dec 24. 2023

 "인민의 아편"


대개 무슨 경구나 속담처럼 이해하지만 그리 간단히 볼 말이 아니다. 특히 종교인구 수가 총 인구 수를 상회한다는 이 한반도 남부의 현실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인민의 아편"은 맑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나온다. 다소 긴 내용이니 저 말이 나오는 부분만 옮겨 다시 생각해 본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고,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종교적인 불행은 한편으로는 현실의 불행을 표현한 것인 동시에 그 불행에 대한 항의라는 것이다. 종교는 '불쌍한 피조물', 곧 억압받는 인민의 한숨이고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정신을 잃어버린 현실의 정신이라는 말이다.


그 다음은 이렇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지양(止揚)은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구이다. 인민이 처한 상황에 대한 환상을 타파하라는 요구는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타파하라는 요구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맹아에서 볼 때,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 있는 통곡의 골짜기인 속세에 대한 비판이다. 그 비판은 질곡으로부터 가상의 꽃들을 뽑아내 버린다. 그것은 인간이 환상을 벗겨냄으로써 상상과 위안이 사라져버린 질곡 속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질곡을 떨쳐버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꽃들을 얻기 위해서다. 종교에 대한 비판은 미몽에서 깨어나고 사리분별을 획득한 인간처럼 사유하고 행동하면서 그의 현실을 형성시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자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현실적 태양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인간을 깨우친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는 한 종교는 인간의 주위를 맴도는 환상적 태양일뿐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피안(彼岸)이 사라진 뒤에 차안(此岸)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이 역사의 과제다. 인간의 자기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후에, 신성하지 않은 세속적 형태들 속에 들어있는 자기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에 봉사하는 철학의 과제다."

작가의 이전글 세밑의 초현실주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