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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05. 2024

주인공(主人公)

아침에 김시습의 시 「만성(漫成)」을 꺼내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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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뒤에는 장차 어찌 할거나

홀연히 내 방 텅 비리니

다시는 세상 노예 되는 일 없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리

(老大將何適, 翛然一室空, 更無形物役, 唯有主人公)


『무문관(無門關)』에 ‘주인공’이란 말의 유사한 용례가 보인다.  『무문관』은 남송(南宋)의 선승(禪僧)인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 1260)가 지은 책이다. 선배 수행자들의 선록(禪錄) 중에서 공안 48칙(公案 四十八則)을 뽑고 그것에 대한 평가인 평창(評唱)과 시(詩)인 송(頌)을 덧붙인 것이다. 그중 제12칙의 제목은 ‘암환주인(巖喚主人)’, 곧 서암(瑞巖, 850~910) 선사가 주인공을 부른다는 뜻이다. 그 본문과 평가, 그리고 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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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서암 선사는 날마다 스스로 “주인공”이라 부르고, “예” 하고 스스로 대답하고는 이내 “정신 차려라, 깨어 있는가”라 하고, “예”라 대답했다. “어느 날 어느 때도 남에게 속지 말라” 하고는 “예, 예”라고 자문자답하였다.


- 평가 : 서암 늙은이는 자기가 팔고 자기가 산다. 어쩌려고 수많은 도깨비 가면을 가지고 노는 것일까. 저것 보게,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대답하고, 하나는 깨어 있으라고 하고, 하나는 남에게 속지 말라고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를 붙들어도 잘못이긴 마찬가지다. 만약 서암 흉내를 내려 들면 여우의 견해에 떨어진다.


- 시 :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도 진실을 모른다 / 다만 본래의 신령함을 식으로 삼은 것이 / 무량겁으로 나고 죽음의 근본이 되었거늘 / 어리석은 이는 사람에게 본래 생사가 있다 한다.


이렇게 보면 김시습 시에 나오는 ‘주인공’이란 말은 요즘 우리가 쓰는 주인공 혹은 주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그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고, 늘 변화하는 무엇이다. 이것은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대답하고, 하나는 깨어 있으라고 하고, 하나는 남에게 속지 말라고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를 붙들어도 잘못이긴 마찬가지다”라는 평창(評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한 것 같다. 외물(外物)에 휘둘림이 없이 늘 자신을 삶의 주인공으로 불러내야 마땅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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