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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05. 2024

김만중


‘김만중’ 하면, 호가 서포(西浦)이고, 효성이 지극해서 귀양지에서 어머니를 위해 하룻밤에 <구운몽>을 지었으며, <사씨남정기>를 통해 바람직한 가정상을 제시했고, 우리말을 사랑해서 참다운 노래는 우리말로 부를 때 가능하지 한문으로 노래하면 앵무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학자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그런데 그는 요즘말로 하면 해체론자이기도 했다. 텍스트 내부의 논리에 입각해 그 텍스트의 모순을 드러내 해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보자. “중용(中庸) 서문에 ‘인심(人心)은 도심(道心)에게서 명을 듣는다.’고 한 말은 가장 해독하기 어렵다. 대개 이미 ‘마음의 허령(虛靈)과 지각(知覺)은 하나일 뿐이다.’라고 했다면, 인심과 도심이 어찌 두 마음이겠는가? 이를 임금에 비유한다면, 도심은 임금이 조정 회의를 보거나 강론을 하고 있을 때와 같다면, 인심은 잔치를 벌이거나 한가롭게 놀 때와 같다. 그것은 사실은 한 사람의 몸인 것이다.” ‘해독하기 어렵다’고 하여 자신의 한계를 은근히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유교의 핵심 논리에 심대한 허점이 있음을 주장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닌가 한다.


그는 유자이면서도 불교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열린 지식인이기도 했다. 논리적으로 중요한 맥락에 이르면 곧잘 불교 이야기로 그것을 넘어서곤 하였다. “불서(佛書)가 비록 번다하지만, 그 요점은 ‘진공묘유(眞空妙有)’ 네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규봉(圭峰) 종밀(宗密)이 이르기를,  ‘진공(眞空)이라는 것은 차 있는 것이 비어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고, 묘유(妙有)란 것은 비어 있는 것이 차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은 주염계(周溓溪)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란 말과 아주 비슷하다.” ‘진공묘유’나 ‘무극태극’은 논리상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내가 <서포만필>을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다가온 말이다. “불서(佛書)에 이르기를, 오백 나한(羅漢)이 각각 그들의 생각대로 부처의 말씀을 해석하여 부처님에게 묻기를, ‘누가 부처님의 뜻을 제대로 터득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이때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두가 내 뜻이 아니다.’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한들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라 하니, 부처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다. 비록 너희들이 논한 바가 내 뜻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희들이 세교(世敎)를 잘 감당하여 공이 있게 된다면 죄가 아니다.’라 하셨다.”


절대주의 시대에 상대주의를 견지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소 지나친 우려겠지만, 파시즘의 징후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오늘날 그 전체주의에 균열을 내는, 다양한 내용과 수준의 상대주의가 좀 더 다채롭게, 그야말로 백화제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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