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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06. 2024

호미 바바


《문화의 위치》를 읽은 지 오래여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탈식민주의 이론가 호미 바바는 ‘식민주체의 동일성’을 고정적인 정체성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호미 바바에 따르면, 예를 들어 식민주체인 백인 경찰은 검둥이들을 바라볼 때 저것들을 짓밟고 싶다는 ‘지배욕망’을 가지는 한편, 저 검둥이들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소위 식민주체의 양가성이다. 말하자면 식민주체의 동일성이라는 것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견고하지 못한 상태 혹은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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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교수의 어떤 '논문'(!)을 보니, 기존의 연구가 어떤 장르를 “식민주체들이 동일성(정체성)을 관철하기 위한 매개체로 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 요점은 “호미 바바가 혼종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피식민자가 차별적인 정체성을 생산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이 전체적인 논의는 정체성 대 정체성의 충돌이라는 틀에 갇히게 되어 기존 논의와는 또 다른 극단을 치닫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관점은 호미 바바가 주장하는 탈식민주의의 그것과는 맥락을 달리하거나 무관하다는 점이다.


나 같으면 식민주체의 양가성에 주목해 그 내부의 균열을 찾아내고, 그 균열에 피식민지 사람들이 보이는 여러 수준의 반응들을 검토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탈식민지 문화이론에서 흉내와 조롱은 혼종성의 전술이기도 한 바, 결국은 지배 권력에 대한 전복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공허해질 수 있다. “흉내와 조롱”에서 “지배권력에 대한 전복”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공소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호미 바바에 따르면, 피식민지인들은 “흉내와 조롱”같이 어설픈 반응에서부터 “오독과 왜곡”이라는 적극적인 대응도 함께 보인다.


요컨대 한편에 “흉내와 조롱”, 그 반대편에 “오독과 왜곡”을 두고, 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변이들을 풍부하게 찾아내 해석하는 일이 “기존의 편견”을 극복하는 더욱 중요한 방법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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