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Jan 05. 2024

세한도(歲寒圖)

내일이 소한이라기에 '세한(歲寒)'에 대해 말한 《논어》 〈자한(子罕)〉 이야기가 생각난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세한(歲寒)이 되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子曰,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여기서 "세한(歲寒)”은 24절기 중 가장 뒤에 속하는 두 절기인 소한과 대한, 곧 일 년 중에서 날씨가 가장 추운 시기를 말한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에서 “조(彫)”는 시들 조(凋)와 같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냐”고 문제제기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많은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린 뒤에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울창하고 무성하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이지 결코 자연과학적 관찰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후대 사람은 항상 “송백 같은 사람”이라는 말로 지조 있는 사람을 형용했다.


내가 보기에, “소인은 치세에 군자와 다를 바 없지만, 오직 이해를 당하고 사변을 만난 뒤에야 군자의 지킴을 볼 수 있다”라는 『집주』의 풀이는 여러 변주를 가능케 한다. “선비는 궁할 때 절의를 볼 수 있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알 수 있다”는 따위다. 요즘은 반대로 가고 있다. 세상이 어려워지면 자기 이익을 챙기려 혈안이 되는 공직자들이 난무한다. 연전 자동차세를 다섯 번씩이나 내지 않아 결국 차를 압류당한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시민들에게 준법을 강조하는 시대인 것이다.


여기서 ‘세한도(歲寒圖)’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844년 제주도에서 유배를 살던 추사 김정희. 다들 등을 돌릴 때,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은 두 번씩이나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주었다. 이에 탄복한 추사가 이 구절을 화제로 삼아 그려준 것이 ‘세한도’이다. 그림 옆에 붙인 추사의 발문을 읽으면서 당시 대인들의 교유를 짐작이나마 해 보자.


"지난해엔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가지 책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하장령(賀長齡)의 <경세문편(經世文編> 보내왔다. 이들은 모두 세상에 늘 있는 게 아니고 천만 리 먼 곳에서 구입해온 것들이다. 여러 해를 걸려 입수한 것으로 단번에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의 풍조는 오직 권세와 이권만을 좇는데, 그 책들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심력을 쏟았으면서도 권세가 있거나 이권이 생기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 밖의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보내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들이 권세나 이권을 좇는 것처럼 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은 ‘권세나 이권 때문에 어울리게 된 사람들은 권세나 이권이 떨어지면 만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대 역시 세상의 이런 풍조 속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권세나 이권의 테두리를 벗어나 권세나 이권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단 말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계절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고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자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 서한시대처럼 풍속이 순박한 시절에 살았던 급암(汲黯)이나 정당시(鄭當時)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권세에 따라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였다. 하비(下邳) 사람 적공(翟公)이 문에 방문을 써서 붙인 일은 절박함의 극치라 할 것이다. 슬프구나! 완당노인이 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옛글을 읽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