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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08. 2024

인민의 벗

【인민의 벗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어떻게 싸우는가】


1894년 스물 네 살의 레닌이 쓴 책 제목이다. 레닌은 ‘인민의 벗들’, 즉 인민주의자들(나로드니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당시 러시아 혁명운동 진영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이들 인민주의자들은, 인텔리겐차가 지도하는 농민들의 힘으로 짜르 정부를 타도하려 했었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사회 변혁의 주체는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이며, 오브시나(농민공동체)가 혁명의 토대라고 생각했다.(물론 당시 인민의 대다수인 농민들, 그리고 지식인들은 열광했지) 나아가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를 건너뛰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 레닌 역시 인민주의자였다. 그러나 당대의 논객들인 인민주의 이론가들,  미하일롭스키와 유자코프, 크리벤코를 차례로 공격함으로써 인민주의가 반(反)마르크스주의임을 폭로한다. ‘인민의 벗’이라는 가면을 쓴 이 사상이 실은, 착취계급이 인민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을 돕고 있다고 ‘까발린’ 것이다. 그가 만일 저 ‘찬란한’ 지도자들의 뒷줄에 서서 열광만 했다면, 훗날의 레닌주의는 싹트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방 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다시 하자는 게 아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런 거다. 레닌이 당대의 ‘눈부신’ 논객들이 펼치고 있는 물적 토대랄까 의식지향이랄까 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지적,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내부로부터 깨고 나와 그것이 쌓아올린 완고한 성벽[고정관념이든 기득권이든 낡은 지식체계든 포퓰리즘이든]을 깨부수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수많은 인민주의들, 곧 ‘인민의 벗’을 자처하는 자들"이 과연 누구이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질서 혹은 체제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그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오늘날 지식인은 도대체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나는 레닌처럼 훈늉한 지도자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그래서 너절한 항변이 들려오는 것 같기다. 서경식 선생의 말로 대신한다.


" '선생님, 저는 지식인이 아닙니다.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들이 지식인이지요. 저는 그냥 월급쟁이에요'라고 자신을 비하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권력의 중심에 가있어요. 우리는 권력의 중심에 없으니까 그런 얘기밖에 할 수 없지요."


덧. 오늘날 진영론에 갇혀 허우적대는 소위 진보지식인들이야말로, 소위 개화기 때  서재필이 한 말을 빌어 쓰자면, '세상에 불쌍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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