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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09. 2024

성심(聖心)과 망심(妄心)

성스러운 마음 사라지면 망령된 마음도 사라져(聖心消處妄心消)


김시습의 <성지가 와서 '인천안목'을 강학하다(誠之來學人天眼目)>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성스러운 마음"이라고 한 성심(聖心)은 글자 그대로만 보면, 뭔가를 깨달아 보려고 애쓰는 마음 혹은 세상사 진리를 깨달았다고 자부하는 마음을 말한다. "망령된 마음"이라고 한 망심(妄心)은 잘못된 판단이거나 헛된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을 말한다.


성심이 유가(儒家)와 관련이 있다면, 망심은 불가(佛家)에서 혐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구는 이렇게 풀 수 있겠다. "유가의 길 버리면 불가의 길도 사라져" 물론 그 반대, 곧 "불가의 길 버리면 유가의 길도 사라져"도 성립한다.


양쪽 어디에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락양변(不落兩邊)" 혹은 "양변불락(兩邊不落)"이다. 이는 유가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와는 다른 것이다. 중도가 양 극단을 인정한다면, 이것은 양 극단 자체를 부인하거나 넘어선다.


제목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시에서 김시습은 이렇게도 말했다.


나뉜 길은 다르지만 마음 기르는 건 마찬가지(岐路雖殊只養心)

마음 기르기는 부질없이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네(養心不必漫他尋)

세상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데(但於事上渾無碍)

내 어찌 찌꺼기를 찾아 나서겠는가(糟粕何須歷歷尋)


정말 능력이 좀 있다면 이런 시들을 바탕으로 '시방 여기서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펴나갈 수 있을 텐데, 아쉽고 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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