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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11. 2024

안가한 말들

 

미당 서정주 전집 출간을 총지휘한 K대 이모 교수의 “말”들을 보면, 이게 과연 비평이고 평론인가 의아해진다.


예컨대 다음 발언을 보자. 미당 서정주의 시를 “정치와 역사가 아닌 예술의 관점에서 얼마나 훌륭한지 봐달라.”고 했다. 그런데 왜 저 양자의 연관에 대해서는 고민하려 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태를 너무 쉽고도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 친일은 시인에게 일종의 ‘상흔’ 같은 것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상흔이 시에서 어떤 미적 파탄으로 드러나고 있는지(없다면 왜, 어떻게 해서 없는지)를 해명하는 게 평론가의 임무일 것이다.


그는 “잠실운동장에 잡초 몇 개가 있다고 운동장을 갈아엎어야 하겠나”라고도 했는데, 만일 그 잡초가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독풀이라면 차라리 갈아엎는 게 낫지 않겠는가. 왜 “말들”을 이렇게 쉽게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어떤 국면이 매우 복잡하다고, 그러니 신중하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대개의 경우 명료한 평가를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려는 변명으로 작동할 때가 있다.


“미당의 문학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예술의 관점, 좀 더 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데 대해 안타까움 느낀다.”고도 했는데, 저 ‘인간적인 이해’라는 말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말로 객관적인 비평의 언사일 수 없다. “훌륭함 속에는 인간적인 약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데, 다만 그렇게 말할 근거 같은 것은 최소한이나마 제시하는 게 좋겠다.


말들, 특히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잘못된 이항대립에 호소하는 지식인의 말들은 안가(安價)하다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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