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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12. 2024

광인(狂人)과 타자(惰者)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병폐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마저 없다. 옛날 광인(狂人)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았지만, 오늘날 광인은 방탕하다. 옛날 긍지를 가진 사람은 정중했지만, 오늘날 긍지를 가진 사람은 조급하다. 옛날 어리석은 사람은 정직했지만,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은 속일 뿐이다.” 子曰, 古者民有三疾, 今也或是之亡也. 古之狂也肆, 今之狂也蕩. 古之矜也廉, 今之矜也忿戾. 古之愚也直, 今之愚也詐而已矣.(《논어》 <양화>)


“광(狂)”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풀어놓고 자유자재하면서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법천지로 난폭하여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긍(矜)” 역시 두 가지가 있다. 장중함, 정중함과 조급함, 절박함이다. “우(愚)”는 진짜와 가짜로 나뉜다. 거짓으로 꾸민 정직은 남을 속이는 정직으로 옛날에는 그것을 ‘매직(賣直)’이라 불렀다.


내가 보기에, 공자의 이 말은 당시 풍조에 대한 매우 심각한 비판인 것 같다. 예전에는 ‘광(狂), 긍(矜), 우(愚)’가 ‘사(肆), 렴(廉), 직(直)’이었는데, 지금은 더 나쁜 것, 즉 ‘탕(蕩), 분려(忿戾), 사(詐)’으로 변해 버렸다는 말이다. 주희에 따르면, 차례로 ‘광’은 품이 뜻이 너무 높은 것이고, ‘긍’은 자신을 지키기를 너무 엄히 하는 것이며, ‘우’는 미련하여 밝지 못한 것이다. ‘사’는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고, ‘렴’은 모가 있어 엄격한 것이며, ‘직’은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탕’은 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분려’는 다툼에 이르는 것이며, ‘사’는 사사로움을 끼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다.


공자 당시에는 방탕하고 난폭하며 솔직을 가장하는 따위가 대세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 속에서 우리도 그렇게 어울려 살고 있다. 함부로 나대는 것을 거침없다 하고, 아이들마냥 뽐내는 것을 긍지라 착각하며, 정직을 가장해 사기를 치는 세상이다.


난세에는 ‘양광(佯狂)’, 곧 거짓 미치광이 행세를 하는 지식인이 나타난다. 우리의 경우 김시습이 그렇다. 이황(李滉)이 ‘색은행괴(索隱行怪)’라고 한 그의 방달불기(放達不羈)의 기행(奇行)들은 바로 이 거짓 미치광이 짓의 결과였다. 유학자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괴승(怪僧)’이 된 것이야말로 그 전형적인 모습이다.


참고로 ‘방달불기’는 어디 매인 데 없이 말이나 행동을 거리낌이 없이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羈)’는 말 입에 물리는 재갈을 말한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원효를 기록하면서 제목을 <원효불기(元曉不羈)>라고 하였다. ‘새벽 스님, 매인 데가 없었다’는 말이겠다.


원효는 “우연히 그는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상했다. 그는 그 모양을 따라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의 한 구절인 ‘일체의 무애인(無碍人)은 한 길로 생사에서 벗어난다’는 문구를 따서 이름을 ‘무애’라 하고 계속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하게 했다.”


'방달불기'를 생각하자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새감 궁금해진다. 길게 떠질 거 없다.한 마디로  '타자(惰者)'다.예전에 목은(牧隱)은 “게으른 자는 굶어 죽어야 마땅하다(惰者甘心向溝壑)”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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