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시는 대개 희작(戲作)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언문으로 읽을 때 묘미가 더욱 살아난다. "先生來不謁 (…) 房中皆尊物” 같은 구절을 보자. 뜻은 이렇다. “(서당에 가니) 선생은 나와서 인사도 안 하고 / 방안에는 모두 존귀한 인물이로다.” 그러나 발음나는 대로 읽으면, “선생내불알 (…) 방중개존물”이 되는 식이다.
오늘 밤에는 김삿갓의 <가련>이라는 시를 읽어보기로 한다.
가련한 행색 가련한 몸 / 可憐行色可憐身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을 찾네 /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한 이 뜻 가련에게 전하면 / 可憐此意傳可憐
가련이 능히 가련한 마음 알아주겠지 / 可憐能知可憐心
발음 나는 대로 읽으면 이렇다. “가련행색가련신 / 가련문전방가련 / 가련차의전가련 / 가련능지가련심” 앞에서 보인 시처럼 욕설은 아니지만, 말장난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전했다.
이 시에서 가련은 가련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람 이름, 곧 ‘어여삐 여겨 사랑하는 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는 어여쁜데 나는 가엾다는 얘기를 그렇게 풀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밤은 굳이 그렇게 보고 싶지 않다. 가여운 가련이 불쌍한 가련에게 보내는 하소연으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