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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15. 2024

추측


보통 '추측일 뿐이다'라거나 '추측하지 말라!'에서처럼. '추측'은  ‘무엇을 미루어 짐작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특히 수학에서는 ‘맞다고 생각은 되나 아직 증명되거나 반증되지 않은 명제를 말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좀 다른 뜻으로 사용하였다. 예컨대 <농가월령가>의 "동지 하지 춘추분은 일행(日行)으로 추측하고"라는 구절에서 '추측'은 막연히 미루어 짐작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의 다음 말이 참고된다.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이다. 그러므로 미룸이 올바르면 헤아림에 방법이 생기고, 미룸이 올바르지 못하면 헤아림도 올바르지 못하다. 올바름을 잃은 곳에서는 미룸을 바꾸어 헤아림을 고치고 올바름을 얻는 곳에서는 근본과 말단을 밝혀서 중정(中正)의 표준을 세울 것이다. 이에서 지나치면 허망에 돌아가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비색(否塞)에 빠진다.(「추측록 서」 『기측체의』)


요컨대 <농가월령가>의 저 구절은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는 것을 보고 절기를 안다는 말로, 단순히 미루어 짐작한다는 뜻이 아니다. 말하자면 저 구절에서의 '추측'은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용례와 용법으로 옛글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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