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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24. 2024

발총유(發塚儒)

"다선일여(茶禪一如)"


클리쉐로 덕지덕지 치장한 인사동 찻집 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이다. 그 집에서 차를 (여러 번) 마시면, 깨달음의 문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이다.


근래 차, 소위 '다도(茶道)'에 관심들이 많을 뿐더러 학문적으로도 천착을 하는 모양이다. 간혹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대단히, 그히고 어마어마하게 고평(高評)을 한다.


그런데 그 논문들을 읽어보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전기 모 인사가 "다심일여(茶心一如)", "오심지다(吾心之茶)"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특히 어느 논문에서는 저 "다심일여"에서 "차와 인간주체의 간극의 초월", 나아가 "형이상학적 신비성과 물질적 현실성이 조화를 이루는 내외쌍전(內外䨇全)의 세계 추구"를 읽어내는데, 그 '혜안'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오심지다", 곧 "내 마음의 차"를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대립각 대신,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정신적 공감"으로 정의하는 데 이르러서는 거의 전율케 된다.


그리하여 그 말 조각들을 모아 무려 '사상'을 수립해 내고야 만다. 무지한 나로서는, 차를 사랑하고 그 경지를 음미해 보려는 의도 정도로 읽히는데 말이다.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지만, 지나치게 꿰면 관광지의 싸구려 민속품만도 못한 것이 된다. 생소해서 유식해 보이지만, 사실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어떨 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용어들을 그럴싸하게 늘어놓는 일이야말로 고전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흔히 하는 장기인 매문(賣文), 곧 글장사의 단골 전략 중 하나이다. 이문을 남기려 혈안이 되어 있는 장사치의 목표가 '외화내빈'이라는 점에서 둘은 한통속이다.


클리쉐 넘쳐나는 전통찻집에서 유한계급들을 모아놓고 나누는 '고담준론(枯談噂論)' 따위를 학문으로 치장하는 건, 시체의 입에 물려 매장한 구슬, 곧 반함(飯含)을 훔쳐서 자랑하는 것처럼 너절한 짓이다. 바로 장자가 비판한 '발총유(發塚儒)'! 무덤을 파서 먹고 사는 유학자놈들!


유자(儒者) 두 놈이 도굴을 한다. 대유(大儒)가 망을 보고 소유(小儒)는 묘혈을 판다. 먼동이 터오자 대유가 위에서 빨리 하라고 닥달을 한다. 소유가 낑낑대며 대답한다. "수의는 다 벗겼는데, 입속의 구슬을 아직 못 꺼냈어요." 대유가 말한다. "넌 <시경(詩經)>도 못 읽었냐? '살아 베풀지 않았거니, 죽어 어이 구슬을 머금으리오'라고 했지 않았더냐. 위를 꽉 잡고 턱 아래를 탁 쳐 버려! 구슬 안 깨지게 조심하고." 소유가 쇠망치로 시신의 턱을 쳐서 입속 구슬을 조심스레 꺼냈다. <장자> '외물'편에 나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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