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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25. 2024

스키야키(鋤焼, すきやき)

날도 춥고 출출하니 어릴 때 간혹 해 먹었던 스키야키가 생각난다. 뭐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소고기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고급이기는 하다. 얇게 저민 소고기 약간에, 갖가지 채소(버섯, 배추, 당근, 양파, 은행  등)를 넣고 끓인 후, 간장을 넣고 계란을 푼 데가 건더기를 찍어 먹는다. 나는 그 계란 물을 참 좋아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사카모토 큐가 1963년 같은 제목의 노래로 연속 3주 간 빌보드 차트(아시아 노래로는 처음으로 1위)에 올린, 이 음식(과 유사한 요리)은 조선 후기에도 성행했었다. 무관이 쓰는 전립투를 뒤집어 가장자리에는 고기를 굽고, 움푹 파인 곳에는 국물을 끓여 먹었다. 돈 많은 양반들의 이른바 ‘난로회(煖爐會)’ 풍습이다. 19세기 화가 성협의 <야연(野宴)>(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음식을 둘러싸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논란을 일으킨 사람은 호암 문일평(1888~1939)이다. 그는 《사외이문(史外異聞)》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난로회란 곧 전골회니 흔히 동절에 한기를 막기 위해서 먹는 철 음식[時食]으로서 그 당시 경성 인사 사이에 새로 유행하던 일종 식도락이었음은 도속(都俗) 운운의 문자에 의하여 짐작하려니와, 도애(陶厓) 홍석모는는 이 풍속이 예로부터 고유했던 것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보면 이덕무(李德懋) 시에 “서양 거울은 눈동자가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것이요/남국과홍이란 밥통이 식탐을 가라앉히는 것이다”(西洋鏡曰眸開眩, 南國鍋紅胃鎭饞)의 연구(聯句)가 있는바 남국과홍(南國鍋紅)에 대하여 이씨 스스로 주석하되 “남비 모양은 갓과 같이 생겼는데, 이것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난로회라고 한다. 이 풍속은 일본에서 온 것이다.”(鍋如笠子, 燒肉爲煖爐會. 此俗自日本來)라고 하였으니, 이로 보면 난로회가 조선 고속이 아니요 일본 것의 수입임을 알 것이다. 이 두 분은 거의 동시의 인물로 동일한 사물에 대한 그 견해가 정상반(正相反)이 되니, 그러면 이 양설 중에 어느 것이 가한가? 이는 오인의 과문(寡聞)으로 증명하기 어려우나, 전골의 남비 명칭과 형상이며 절육(切肉)의 모양과 계란과 마늘 기타 채소(菜蔬)의 조미하는 방법이 어쩌면 이렇게도 일본의 스키야끼와 근사할까? 일본 것이 혹은 조선 신사(信史)로 말미암아 일찍 수입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함도 반드시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도 유신(維新) 전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그러했든지 스키야끼를 먹을 줄을 몰랐다고 하니, 이것이 아마 그때 상류계급에만 있던 것이 조선 사행을 따라 수입되었는지도 모른다.

각설. 허균은 귀양 가 배가 고픈 나머지 좋은 시절 먹었던 음식을 회상하며 책을 지었는데, 그 제목이 《도문대작(屠門大爵)》이다. 푸줏간 앞에서 크게 씹어 본다는 뜻으로, 상상으로 입맛을 다신다는 말이다. 나도 허균을 따라, 이 글을 써 출출함에 대항해  ‘정신승리’를 구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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