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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30. 2024

선비[士]


연암 박지원은 선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士)와 심(心)이 합하면 지(志)가 된다. 그 지(志)는 어떠해야 하는가? 권세와 이익[勢利]을 도모하지 않고, 현달해도 이 선비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가난해도 이 선비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명분과 절의[名節]을 닦지 않고 단지 신분이나 지위[門閥]를 판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이것이 연암이 〈양반전〉을 쓴 이유다. 권세와 이익이나 꾀하고, 신분이나 지위를 이용해 너절한 짓을 서슴지 않으면서 학인이나 교수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덧. 문화재를 책임지고 있 부서의 장이 된 교수가 연전 신문에 쓴 컬럼을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내 인생의 책”으로 “연암 박지원 단편소설”을 들었다. 그런데 가장 기초적인 문제마저 점검하지 않았다면, 그 말에서 진실을 엿보기 어렵다.


“18세기 후반을 살았던 연암 박지원의 베이징 여행기인 《열하일기》에 수록된 허생전, 양반전, 호질, 광문자전, 민옹전 등”라고도 했다. 그런데 《열하일기》에 실린 소설은 〈허생전〉과 <호질〉 두 편이다. 열거한 나머지 작품인 〈양반전〉, 〈광문자전〉, 〈민옹전〉은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다. 《열하일기》와 《방경각외전》은 전혀 다른 성격의 책이다.(모를 땐 《열하일기》 운운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옛소설도 문화재의 하나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서지사항마저 대충 얼버무려 쓰고서 더 큰 일을 잘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이 단편들은 한국문학사에서 부각되지 못하고” 운운하는 것은 해당 학계를 모독하는 일이다. 잘 모를 때는 열심히 배우려고 애써야 마땅하다.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누군가가 내뱉은 말을 주워듣고 그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양 떠버려서야 어디 쓰겠는가.


덧. 그가 "내 인생의 책"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그 작품들을 정독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연암의 명성을 빌어 자신을 '선비'의 위치에 올려놓고자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작태는 우리 주위에 부지기수로 볼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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