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드니 제철 나물을 제때 먹고 싶은 생각이 더욱 부쩍 난다. 입춘에 먹는 나물을 특히 ‘입춘채(立春菜)’라 했다.
미식가 허균은 귀양을 가서 옛날 먹던 음식을 회상하며 《도문대작(屠門大嚼)》(주 1)을 썼지만, 나는 옛글 조각이나 읽으면서 입맛을 다셔본다.
《경도잡지》는 이렇게 전한다. “경기도 골짜기의 여섯 읍(주 2)에서는 움파[葱芽](주 3), 산갓[山芥], 승검초를 진상(進上)한다. 산갓은 초봄 눈이 녹을 무렵 산에서 자생하는 겨자이다. 끓는 물에 데쳐 초장으로 조미하면 맛이 대단히 매워서 고기를 먹은 후에 더욱 좋다. 승검초는 움에서 기른 당귀(當歸)다. 깨끗하기가 마치 은비녀 다리 같은데, 꿀에 찍어 먹으면 매우 좋다.”
“엄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보기에 신신(新新)하여 오신채 부러하랴 // 산채(山菜)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脾胃)를 깨치나니(주 4)” 《농가월령가》 정월과 이월의 노래다.
《도하세시기속시》는 채반(菜盤)이라 하면서 이렇게 노래한다. “하얀 파 노란 부추 푸른 미나리(白蔥黃韭與靑芹) / 승검초와 겨자로 오신채 만들어(甘菜芥芽供五辛) / 섬섬옥수 받들어 궁궐에 보내니(春入千門纖手送) / 상 가득 향긋한 맛 군침이 도네(滿盤香味動牙脣)”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두보(杜甫)는 “봄날의 춘반 부드러운 생채”(春日春盤細生菜)라 했고, 소동파(蘇東坡)는 “푸른 쑥과 누런 부추 춘반을 맛보네”(菁蒿黃韭試春盤)라 노래했다.(주 5)
주.
1. 도문대작 : 푸줏간에서 크게 씹어본다는 뜻.
2. 여섯 읍 : 경기도 중에 산이 많은 양근(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漣川). 기록마다 약간씩 다름.
3. 움파 : 움 속에서 기른, 빛이 누런 파. 엄파라고도 함.
4. 비위를 깨치나니 : 입맛을 돋운다는 말.
5. 춘반 : 햇나물로 차린 음식 혹은 음식을 진상할 때 사용하는 소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