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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란넬 저고리를 추억함

by 진경환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산 옷이 ‘곤색’ 후란넬 자켓이었다. 순전히 내 의사대로 옷을 산 첫 경험이었다. 후란넬(flannel)은, 양 등의 짧은 털이나 재생모를 섞어 만든 방모사(紡毛絲) 모직을 말한다. 요즘은 대개 체크무늬 셔츠로 입지만, 당시는 주로 회색이나 곤색의 콤비자켓을 입었다. 이 선택은, 지금은 ‘저명한 여류 소설가’의 남편이 된, Y대 국문과에서 제적을 당해 놀고 있던 사촌형의 권유를 따른 것이었다. 나는 회색 모직 바지에 이 곤색 후란넬 저고리를 걸치고, 그 안에는 자주색 v넥을 받쳐 입고 다녔다. 당시로서는 꽤 세련된 모양새였다.


당시는 아직 김수영의 시가 지금처럼 널리 읽히지는 않았었다. 1974년에 나온 <거대한 뿌리>는 그래도 좀 읽었는데, 1976년에 나온, 당시 시집으로서는 드문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의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는 그것보다 덜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잔디밭에 앉아 ‘후란넬 저고리’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후란넬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촌놈...’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치기(稚氣)로 충만했던 시절의 얘기다.


1963년에 발표된 그 시는 이렇다.


낮잠을 자고 나서 들어보면

후란넬 저고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거지의 누더기가 될락말락한

저놈은 어제 비를 맞았다

저놈은 나의 勞動의 象徵

호주머니 속의 소눈깔만한 호주머니에 들은

물뿌리와 담배부스러기의 오랜 親近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들은

치부책노릇을 하는 종이쪽

그러나 돈은 없다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래 親近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또 무엇이 있나 나의 호주머니에는?

연필쪽!

옛날 추억이 들은 그러나 일년내내 한번도 펴본 기억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본 일이 없는 왼쪽 안호주머니

―여기에는 혹시 휴식의 갈망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휴식의 갈망도 나의 오랜 親近한 친구이다……


김수영은 이 시를 ‘인찌끼’라고 했다. 인찌끼는 엉터리라는 말이다. 원래 40여행이던 초고를 19행으로 줄였다고 했다. “너무 짧아진 것이 아깝고 분해서 고민을 한 끝에 한 행씩 떼가면서 청서(淸書)를 할까 하다가 장난이 심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는 이 시에 대한 김수영의 다음 ‘詩作 노우트’를 좋아한다. 이런 내용들이다.


‘친근’이란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세 번째의 친근은 “완전한 타성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친구면 친근한 것인데 구태여 친근한 친구라고 불필요한 토를 박은 것이 싱겁다. 이것도 궁여지책으로 친구를 고딕체로 할까 하다가 비겁한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그리고 1행 <낮잠을 자고 나서 들어보면>은 원래 <낮잠을 자고 나서 들어보니>였고, 2행의 <무거워졌다>도 원래 <무거웁다>를 과거형으로 바꾼 것이며, “거기에 <훨씬>이라는 강조의 부사까지 붙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교정이 아니라 자살이”다.


그리고 <인찌끼> 독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의 후란렌 저고리―정확하게 말해서 후란넬이라는 양복기지는―색이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6년 이상을 입어서 팔뒤꿈치가 허발창이 났는데도 색만은 여전히 푸르다. 그리고 여전히 가벼웁고 여전히 보드럽다. 당신들의 구미에 맞게 속시원히 말하자면 후란넬 저고리는 결코 노동복다음 노동복이 못된다. 부끄러운 노동복이다. 그러면 그런 고급양복을―아무리 누더기가 다 된 것일망정―노동복으로 걸치고 무슨 변변한 노동을 하겠느냐고 당신들이 나를 나무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당신들의 그러한 모든 힐난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나의 고독, 이 고독이다.”


이 글을 처음 읽을 당시 나는 그의 고독을 맛보려 도봉산 아래 그의 무덤에서 새우깡에 소주를 마셔보는 등 무진 애를 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이보다 스무 살이나 더 먹은 지금 나는 아직도 그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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