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번역에 대하여

by 진경환


번역문을 읽다 보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장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이런 글이다.


“(고려) 숙종 때 어사대(御史臺)에서 공허(空虛)를 가두기를 아뢰면서 악공(嶽空) 두 자를 써서 성조(聖朝)에서 형벌을 훌륭하게 집행하였음을 보여야 한다고 청하니, 식자(識者)들은 이를 기롱하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원문을 찾아보니 이렇다. “肅宗時御史臺奏, 囹圄空虛,請書獄空二字揭示, 盛朝刑措之美,識者譏之.”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겠다.


“숙종 때 어사대에서 아뢰기를, ‘옥이 텅 비었으니, 청컨대 (옥이 비었다는) <옥공(獄空)> 두 글자를 게시하여 조정이 형조(刑措)하는 미덕을 보이십시오’라고 했는데, 식자들은 그것을 비웃었다.”(참고로 '형조'는 형벌을 폐하여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져 죄를 짓는 사람이 없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옥(獄)을 악(嶽)으로 보면서 번역문이 원문의 뜻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니 옥이 비었다는 뜻인 ‘공허(空虛)’를 사람으로 보는 등 마구 혼란스럽게 된 것이다. ‘공허’에 주석을 달면서 “고려 숙종 때 활동하던 스님인 듯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그야말로 허접한 작문이 되고 말았다.


방대한 원전의 경우, 한 사람이 번역을 하기 어려워 여러 사람이 쪼개어 번역을 하게 되는데, 그때 이런 오류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런 잘못은 번역팀에서 번역문이 나오는 대로 윤독을 해가면서 점검하는 방법 이외에는 달리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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